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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역사의 ‘민낯’ 마주하기

by 뽀키2 2026. 2. 19.

몇해전, 어느 세미나장에서 ‘지방 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자 하는 지자체의 절박함을 이성의 잣대로만 난도질할 일은 아니’라고 ‘동정론’을 펴던 한 분의 모습을 기억한다. 지역을 사랑하는 그 열정이 때로는 과속을 부르고, 그 과속이 본의 아니게 ‘역사 왜곡’이라는 안타까운 생채기를 남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열정을 보듬되, 진정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 과연 어디인지, 편하게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최초’, ‘최고’, ‘발상지’라는 타이틀 뒤에는, 우리 고장을 먹여 살릴 관광 자원을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은 애달픈 노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경북 의성의 ‘조문국 경덕왕릉’. 역사적 기반이 약한 유적이지만, 지역문화와 관광적 해석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빗돌을 보며 비판하기에 앞서, 기록 한 줄 없는 2000년 전의 소국(小國)을 어떻게든 기억해내고 싶었던 그들의 간절함을 먼저 읽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심청전의 무대를 두고 서로 자기네 땅이라며 다투는 곡성군과 옹진군의 모습도, 실은 쇠락해가는 마을에 ‘효(孝)’라는 따뜻한 이야기의 옷을 입혀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은 때로 사랑하는 대상을 병들게 한다. 우리가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지나친 사랑’이다. 역사는 재해석될 수 있지만, 창조되어서는 안된다. ‘재해석’은 있는 사실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지만,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은 ‘환상’이자 ‘신기루’일 뿐이다. 신기루는 목마른 이의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가슴 아픈 해외 사례가 하나 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이른바 ‘신의 손(God’s Hand)’ 사건.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는 가는 곳마다 수만 년 전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해내며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는 일본 역사의 시작을 70만 년 전까지 끌어올린 국민적 영웅이었다. 그의 발굴 성과로 그 유적지가 있는 지자체들은 하루아침에 유명해졌고, 교과서는 다시 쓰였다. 지역민들은 자부심에 젖었고, 지자체는 홍보에 열을 올리며 기념관을 짓고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2000년 11월,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가 이른 새벽 몰래 현장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석기를 땅에 파묻는 장면이 마이니치 신문에 포착된 것이다. 그가 찾아낸, 아니 ‘심어놓은’ 유물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일본 고고학계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를 믿고 박물관을 짓고 거창한 행사를 열었던 지자체들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지역을 빛내고 싶었던 과도한 욕망과 맹목적 믿음이, 지역의 얼굴에 씻을 수 없는 먹칠을 한 셈이다. 우리가 지금 ‘없는 역사’를 ‘있는 역사’처럼 새길 때, 우리도 훗날 이런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지 모두들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당시, 이 사건을 다룬 국내 한 신문의 헤드라인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랑스러워하라, 조작해서라도!”

「가짜의 ‘신의 손’ ― 구석기 유물 발굴 조작 사건」을 보도한 2000년 11월 5일자 마이니치 신문. 
수많은 ‘역사적 발견’을 해오며 ‘신의 손’이라 불리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스스로 석기를 묻어두고, 그것을 나중에 다시 파내 조작한 이 사건으로 일본인의 역사는 무려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고, 교과서 내용마저 바뀌었다.
「가짜의 ‘신의 손’ ― 구석기 유물 발굴 조작 사건」을 보도한 2000년 11월 5일자 마이니치 신문. 수많은 ‘역사적 발견’을 해오며 ‘신의 손’이라 불리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스스로 석기를 묻어두고, 그것을 나중에 다시 파내 조작한 이 사건으로 일본인의 역사는 무려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고, 교과서 내용마저 바뀌었다.


  조작과 과장으로 만든 ‘거짓의 꽃’은 잠시 화려한 향기를 낼 뿐, 검증이라는 역풍을 맞으면 금세 시들어버린다. 하지만 ‘진실의 향기’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그윽하게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가 지역의 역사 콘텐츠를 만들 때 품어야 할 마음가짐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경북 의성의 조문국은 굳이 ‘경덕왕’을 소환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미지의 왕국, 베일에 싸인 고대 국가라는 신비로움 그 자체가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왕의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무덤들은 그들이 한때 찬란했음을 침묵으로 증명한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때, 고고학적 상상력은 더 크게 자극받는다.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접근이다.

  심청전의 무대를 두고 다투는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여기가 진짜 심청이 태어난 곳”이라고 서로 우기기보다, “심청의 효심을 가장 잘 실천하고 배우는 고장”으로 거듭나는 것은 어떨까? 전설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보다 전설이 담고 있는 ‘가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대전과 충북이 단재 신채호 선생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 익산과 부여의 서동요 논쟁, 그리고 진주와 장수의 논개 갈등. 이 모든 것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닌 ‘윈윈(Win-Win)’의 축제로 바꿀 지혜가 우리에겐 있다. 단재 선생이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르다면, 두 지자체가 싸울 것이 아니라 연대하여 ‘단재의 길’이라는 순례 코스를 개발하면 된다. 서동이 익산의 왕자이고 선화공주가 신라의 공주라면, 익산과 경주, 그리고 부여가 함께 동서 화합의 거대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진주시와 장수군이 오랜 갈등 끝에 의기투합하여 논개로 상생의 길을 모색했듯이. 역사적 인물은 행정구역 안에 갇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을 가두려 할수록 그들의 위대함은 작아지고, 그들을 공유하고 나눌수록 그들의 가치는 커진다. 이것이 바로 ‘연대’와 ‘공유’가 가진 힘이다.

  전국의 지자체와 지역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대중은 점점 더 ‘아날로그적 진심’을 갈구한다. 화려한 테마파크보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 한 줄에 마음을 연다.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을 왜곡하기보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실(Fact) 하나를 정성스럽게 내놓을 때, 그것이 지속 가능한 콘텐츠가 된다. 가짜는 빠르고 화려하지만 금방 무너지고, 진짜는 느리고 소박하지만 영원히 남는다. 홍길동의 가짜 생가를 짓고 캐릭터 상품을 파는 것보다, 허균이 꿈꾸었던 평등한 세상의 가치를 지역의 정책으로 녹여내는 것이 홍길동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일 것이다. 왕의 가짜 이름을 새기는 것보다, 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을 고고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해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재해석’일 것이다.

  이제 우리,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자. “우리 고장을 알리고 싶어서 그랬다”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마주하는 역사의 ‘민낯’이 때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결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지금 심는 나무가 당장 내일 열매를 맺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직하게 심은 ‘진실의 씨앗’은 10년 뒤, 100년 뒤 우리 후손들에게 ‘자부심’이라는 거대한 숲이 되어줄 것이다. 왜곡과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지역을 살리고, 나아가 우리 역사를 지키는 가장 확실하고도 따뜻한 길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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