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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마이지엄’Myseum이 던지는 질문

by 뽀키2 2026. 2. 4.

누구나 세계의 문화예술현장을 다니다 보면, 가끔 신선한 충격을 주는 기획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는 최근에 알게 된, 캐나다 토론토의 ‘마이지엄 오브 토론토(Myseum of Toronto)’가 단연코 가장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사례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My’와 'Museum’을 합쳐서 만든 합성어, Myseum(마이지엄), ‘나의 박물관’이라니. 그런데 이 박물관, 주소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토론토라는 도시 전체가 주소다. (참고로 토론토에는 시립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선사업가 다이앤 블레이크와 스티븐 스미스 등의 주도로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도시 전체를 박물관으로 쓰자"는 역발상으로 2015년에 시작된 프로젝트다.

방송인으로, 또 박물관인으로, ‘공간’과 ‘콘텐츠’를 고민해 온 나에게, ‘마이지엄’이 표방하는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이라는 개념은 아주 묵직하게 다가왔다. 으레 박물관이라면, 웅장한 건물, 유리 진열장, 그리고 엄숙한 조명 아래의 유물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이뮤지엄은 그 ‘건물’이라는 하드웨어를 과감히 버렸다. 대신 그들은 도시의 거리, 광장, 낡은 공장, 인터넷 공간, 그리고 시민들의 기억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다. ‘마이지엄’은 토론토의 역사를 특정 영웅이나 지배층의 시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도시를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채집하여 팝업(Pop-up)전시 형태로 도시 곳곳에서 터뜨린다. 지하철역은 갤러리로, 공원벤치는 강연장으로 변한다. 건물 유지비로 들어갈 큰 예산을 오직 콘텐츠 발굴과 큐레이팅, 그리고 시민과의 소통에 쏟아붓는 것이다. 세계박물관학계가 주목하는, ‘21세기형 박물관의 가장 진화된 모델’이라 꼽은 이유를 알겠다.

한국에서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수식어는 낯설지 않다. 고도(古都)나, 민속마을, 혹은 벽화마을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칭한다. 하지만 한국의 ‘지붕 없는 박물관’은 대개 물리적인 문화재가 노천에 널려 있거나, 낙후된 지역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벽화라는 화장을 덧입힌 경우에 그친다. 그곳에는 ‘공간’은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서사’가 결여되어 있다. 관람객은 사진을 찍고 지나갈 뿐, 그 공간의 삶과 대화하지 못한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인구 240만의 대구를 떠올렸다. 대구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낸 도시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 섬유 산업의 흥망성쇠, 2.28 민주운동의 기개, 그리고 근대 골목에 서린 수많은 예술가의 발자취까지. 대구만큼 ‘마이지엄’을 실험하기 좋은 캔버스도 없다. 이미 몇몇의 골목 투어가 성공을 거두었다지만,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물리적 골목길 투어를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박물관으로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의 혁신이 필요하다.

‘마이지엄’이 기획한 전시회 "52: 토론토를 변화시킨 여성들의 이야기" 포스터
토론토를 변화시킨 52명의 여성을 기리는 전시회로, 오랫동안 그들을 배제해온 서사에 도전함을 기획의도로 삼아, 그들의 유산을 조명했다.
‘마이지엄’이 기획한 전시회 "52: 토론토를 변화시킨 여성들의 이야기" 포스터 토론토를 변화시킨 52명의 여성을 기리는 전시회로, 오랫동안 그들을 배제해온 서사에 도전함을 기획의도로 삼아, 그들의 유산을 조명했다.

 

그렇다면 대구에 ‘마이지엄’을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건물 짓기’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자체들은 문화 사업을 한다면 으레 번듯한 기념관이나 센터부터 지으려 한다. 8할의 예산이 건축비로 들어가고, 정작 그 안을 채울 콘텐츠와 전문 인력확보에는 인색하다. ‘대구형 마이지엄’은 건물이 필요 없다. 서문시장의 국수가게가 전시관이 되고, 북성로의 공구상가가 체험장이 되며, 문 닫은 섬유공장이나 폐교 등이 아카이브가 되어야 한다. 예산은 건물보다,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는 큐레이터와 아키비스트에게 쓰여야 한다. 그다음은 ‘관(官)주도’ 아닌 ‘시민 주도’의 아카이빙이다. 공무원이나 몇몇 역사학자가 결정하는 ‘중요한 역사’가 아니라, 시민들이 간직한 장롱 속 앨범, 할머니의 녹음된 목소리, 보통사람의 일기장이 전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섬유 공장에서 젊음을 바친 여공들의 이야기, 피란 시절 향촌동에서 예술을 논했던 문인들의 이야기가 박물관 진열장이 아닌, 실제 그 현장에서 팝업 형태로 전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델을 대구에 적용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걸림돌이 존재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행정 풍토가 아닐까. ‘벽 없는 박물관’은 눈에 보이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없다. 개인의 업적으로 내세우기에 ‘사진발’이 잘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 예산이 쓰이는 것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건물도 없이, 그게 무슨 박물관이냐”는 고정관념과 싸우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두 번째 걸림돌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빈약한 철학이다. ‘마이지엄’은 축제처럼 한 번 떠들썩하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과정이다. 지자체의 많은 문화사업들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이유는 전문성 없는 순환보직자가 담당하거나, 단발성 용역사업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마이지엄’처럼 독립적인 운영권을 가진 비영리 재단 형태나,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장기적 운영을 맡기는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는 또하나의 보여주기식 행사로 전락할 것이다. 또, ‘갈등을 드러내는 용기’가 없다는 것이 마지막 걸림돌이다. ‘마이지엄’은 도시의 영광뿐 아니라 갈등의 역사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대구의 역사 속에 분명 덮어두고픈 아픔이나 이념적 갈등이 존재할 것이다. 장담할 수 없고, 쉽진 않겠지만, 미화하거나 검열하지 말고, 공론의 장에서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민 의식과 행정의 관용이 필요하다.

캐나다 토론토의 ‘‘마이지엄 오브 토론토’는 유연성과 기동성을 갖추고, 찾아가는 박물관으로서,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역사까지 다룬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연 박물관인가?"라는 정체성 혼란과 인지도와 지속가능성의 부족, 역사의 파편화(fragmentation)등이 우려된 실험적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바라보는 상상력, 그리고 소외된 작은 이야기들을 귀하게 여기고 연결하는 '큐레이션의 리더십'이 만든 혁신이다. 2024년 4월 2일, ‘마이지엄 오브 토론토’는 2015년 설립 이후 지켜온 ‘벽 없는 박물관’의 정체성을 이어가면서, 대중적 접근성과 인지도를 더 높이기 위해 공식 명칭을 ‘뮤지엄 오브 토론토’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박물관 측은 지난 10년간 500만 명 이상의 방문객과 소통해 온 성과를 바탕으로 토론토의 다양한 역사를 계속 보존하겠다고 밝히고, 이번 변화는 토론토 최초의 시립 박물관 건립을 향한 중요한 도약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계획된 반전’, ‘기대 충만’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마이지엄’은 “도시의 주인은 건물주가 아니라, 그 도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대구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다. 이제는 그 매력을 가두지 말고, 도시의 모세혈관 속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벽을 허물고 나와 시민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박물관. 그것이 진정한 ‘문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대구가 선택해야 할 가장 세련되고도 용기 있는 도전일 것이다. 대구의 골목마다, 시장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빛마다 살아있는 ‘대구형 마이지엄’이 시작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박물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다시 묻는다면, 우리는 이제 분명히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너와 나를 잇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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