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를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해도, 지식산업의 기저는 ‘출판’이고, 흐름과 전파는 ‘잡지’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많은 미디어들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뿐’인 사실을 지나칠 정도로 죄다 전하고 있지만, 잘 만든 잡지처럼 마음에 카렌다를 달아주진 않습니다. 잡지는 신문과 달리 비평이 기본입니다. 우리나라 문화현상이 혼란스러운 것도, 정치니 경제가 우스꽝스러운 것도, 지식의 개념이 하향 평준화된 것도 진정한 의미의 잡지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랫동안 좋은 잡지의 탄생을 기대했지만,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돈있는 자 생각없고, 생각있는 자 돈없는 이치가 딱맞아 떨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잡지가 많았습니다. 기억이 아련하시겠지만, 한창기의 정신이 살아있고, 설호정의 깐깐함이 멋있었던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은 우리 문화의 가장 절절한 변용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네 삶이 주제라면 가장 훌륭한 변주였고, 전통문화가 주제라면 또한 가장 빼어난 변주였습니다. 이탈리아 베네통회사에서 만드는 다국적 잡지 [컬러스(COLORS)]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이 잡지는 한때 잘나갔던 [페이퍼]니, [통조림]이니 하는 테마잡지의 효시였던 셈입니다. 세상에 이런 박물지가 어디 있나 말할 정도로 대단했었습니다. [지오(GEO)]도 창간호부터 경이감을 더해주었었고, 미국 잡지 [인터뷰]를 본딴 [아이매거진]도 빼어난 잡지였습니다. ‘괜찮다’는 평판을 얻은 몇몇 잡지들은 지적 등대가 됐을 지는 몰라도, 많은 대중들이 공감하는 바 없어, 한때의 ‘지적 사치’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잡지는 ‘잡(雜)’을 벗어난, ‘잡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주는 잡지가 바로 사보(社報)인 것 같습니다. 기업의 홍보물 중의 하나로 폄하하기도 하고, 광고지의 또다른 변신이며, 문화를 가장한 상술이라고도 하지만, 한솔그룹의 [청년정신]이나, 쌍룡의 [여의주], 삼성문화재단의 [문화와 나], LS네트웍스의 [보보담]같은 사보를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백화점, 카드회사, 화장품회사의 사보가 사보의 전부인 양 느껴온 사람들에겐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기업의 사회공헌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외보의 활약은 참으로 값집니다. 대구에서는 30년 이상 발행해온 대구은행의 사외보 [향토와 문화]는 분명히 제 몫을 하는 잡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만드는 잡지 [후쿠오카 스타일]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고, 사랑받는 잡지입니다. 시민 모두가 필자요, 그 도시를 둘러싼 모든 것이 소재인 잡지입니다. 알려진 명성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대구는 1930년대에 문예잡지 [동성(東聲)]을 발행한 곳이고, 광복기인 1945년 12월엔 종합잡지 [무궁화]가 창간된 곳입니다. 아동문학 매체였던 [새싹](1946년 1월 창간)과 [아동](1945년 12월 창간)을 발간한 경험을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광복 후 첫 시동인지인 [죽순]도 탄생했는데, 임시 출간물까지 포함, 1949년 7월까지 12집을 간행한 [죽순]은 1948년 대구 달성공원에 이상화를 기리는 ‘상화시비’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제8호에 실린 건립과정을 통해, 이 비는 한국근대문학 최초의 문학비로 기록됩니다. 큰 기여를 한 것입니다. 한국전쟁 중에는 문화계와 교육계의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잡지 [소년세계]와 중학생잡지 [학원]이 모두 피난지 대구에서 창간되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소년세계]는 1952년 7월 1일 창간되어 1955년 11월 통권 36호로 종간되었고, [학원]은 1952년 11월 1일 창간된 중고등학생의 교양지로서 1961년 9월호 통권 92호를 발행하고 휴간합니다. 종합월간지 [신태양]도 이즈음 대구에서 창간됩니다. [신태양]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8월 창간된 잡지로, 초기에는 대중지를 지향했으나, 1954년부터 종합지로 바뀌었고, 1961년 6월까지 발행되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지속적으로 발행된 대표적인 잡지로, 국내외 정치 상황, 사회문화, 시사, 일상 풍속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195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담아냅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우리는 1991년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만나게 됩니다. 故김종철 영남대 교수가 주도한 이 잡지는, 환경운동의 계몽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이론적 해석이 얼마나 경외스러운지 느끼게 하는 훌륭한 잡지입니다. 환경, 생태, 민주주의, 공동체, 인권, 탈성장, 자급자족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루면서 상업적 광고 없이 독자들의 구독료만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잡지입니다. 생태주의 사상과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담론을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환경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데 기여한 [녹색평론]은 결국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가버렸지만,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지역의 잡지문화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늘 이런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젊은 지식게릴라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는가’, ‘편집과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광고와 배포의 지속가능성까지 있는가’, ‘아이디어풀을 가동할 만큼 여러 생각들이 드러나 있는가’, ‘웹진, 팟캐스트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오너의 생각이 앞서있나’, ‘古典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는가’, ‘동시대의 세계를 호흡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의 끝은 이런 여러 가지 ‘필요조건’을 드러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콘셉트 잡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잠언(箴言)류로만 독자를 달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실용서로 분류될 만큼, 통계분석, 시각의 차이 등을 찾아내 독자와 잡지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류의 잡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을 호도하지 않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독자들이 자기 얘기들을 하게끔 하자는 뜻인데, 다채로워진 미디어환경이 제대로 업데이트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또 ‘문화 현상을 제대로 풀어내는 잡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포괄적 교육개혁 로드맵 ‘교육비전 2002’는 학생들에게 ‘사회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는데, 사회의 교과서가 너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화현상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었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현상을 전해주는 잡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즉 ‘문해력’ 교육이 필요했습니다. 단, 문화를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빼고, 교조적으로 문화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빼고, 인상비평식으로 문화를 단죄하는 사람들도 모두 빠져야만 반듯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을 이해하는 잡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변해갑니다. ‘서울(수도권)만 알면 모든 게 땡!’이라는 식입니다. 지역을 알리는 것은 거의 ‘놀자판’입니다. ‘국뽕’처럼 보는 이를 민망하게 하지 말고, 감히 버릴 수 없는 귀한 정보들로 거듭할수록 지역의 박물지(博物誌)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과연, 대구에 ‘잡지인 척’ 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잡지문화가 있는가? 좀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 소중한 역사를 낳았으면서도 그 정신을 지켜오고 있는가? 자본만으로도 나올 수 없고, 문화를 향한 결기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그런 잡지문화가 있기는 하는가? ‘잡지’와 ‘정보지’를 구분하는 안목들은 지니고 있는가? 나는 이 도시에서 여유와 흥을 담아 부르는 따뜻한 정서의 잡지타령(雜誌打令)을, 손에 쥐면 모두들 자연스럽게 장단을 타게 되는 그 느낌을 언제쯤 느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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