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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물관 이야기

한 인간의 생애를 빈틈없이 추억하기, 중국 베이징 '루쉰박물관'

by 뽀키2 2023. 2. 26.

책 안내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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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피규어
루쉰 피규어

베이징의 판자위엔(潘家园) 새벽시장에서 루쉰의 미니어처 하나를 100위안에 샀다. 이건 득템이야! 한족 청년의 꾀죄죄한 손에서 넘겨받은 루쉰을 호텔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어 빛 드는 곳에 두고 기분 좋게 박물관으로 향했다.광인일기·아Q정전의 작가 루쉰(魯迅 1881-1936)을 모르기는 쉽지 않다. 열병처럼 청춘을 앓던 사람들이 읽고 기운을 차렸던 중국 작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그러기에 중국 어느 도시든 쑨원을 기억하는 중산대로가 있듯 루쉰이 머문 곳마다 박물관이나 공원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베이징의 루쉰박물관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루쉰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루쉰은 베이징에서 12년간 살았다. 그가 살던 한족 전통가옥인 사합원 양식의 옛집(魯迅故居)이 복원되어 있고, 그 곁에 루쉰박물관이 있다. 로비의 벽마다 그의 책 속에서 뽑아낸 문구들이 빼곡하고, 로비 한가운데 구겼다가 펴진 듯 한 「광인일기 육필원고를 모형으로 꾸민 석조조형물이 놓여 있다. 전시장 입구 큰 벽에는 그의 저서 『수감록』 「생명의 길」에서 따온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길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밟고 나온, 오직 가시덤불만 있는 곳에서 헤쳐 나온 것이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전시실은 모두 그가 생활했던 지역별로 시기를 나누어 꾸몄다. 각 구역마다 그가 사용한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두어 분위기를 살렸다. 샤오싱(紹興) : 1881- 1898, 난징(南京) : 1898-1902, 일본유학 : 1902-1909, 베이징(北京) : 1912-1926, 샤먼(廈門) : 1926-1927, 광조우(廣州) : 1927, 상하이(上海) : 1927- 1936. 느리게 가는 버스의 차창 밖 풍경처럼 그의 한 생애가 지나간다. 태어난 곳, 생각을 치열하게 벼린 곳, 그리고 되돌아온 자리. 그는 도처에 순간의 기억으로 살아있었다. 유명인의 이름을 단 기념관이 유물이나 저작, 사진자료등을 통해 한 인물의 생애를 보여주는 방식은 다양한데, 이곳 베이징 루쉰박물관은 대단히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 잃은 의자와 책상, 그를 ‘사상적인 스승’으로 여기는 중국의 유명 판화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새긴 목판화 작품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담은 데스마스크는 그가 지상에 더 이상 없음을 자꾸만 상기시켜 준다. 설명적이지 않음에도 곳곳에서 루쉰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얘기를 들려준다.

로비의 루쉰육필원고상_광인일기
로비의 루쉰육필원고상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된 그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전시장 서가. 한국 출판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루쉰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런 사실이 안타깝다고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투덜거렸다. 최근 이를 알게 된 북경의 한국문화원 원장이 서둘러 챙겨 기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의 청년들이 루쉰을 기억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만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루쉰의 작품은 오랫동안 읽혔고, 지금도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루쉰’이라 치면 300여 종의 책이 솟구쳐 오른다. 게다가 국내 중문학자들이 2018년, 11년에 걸쳐 중국판 루쉰 전집을 완역해 총 5만 3,000쪽이 넘는 20권 전집으로 발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발간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루쉰를 읽는다. 이 말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실존적 울림이 담겨 있다.”

루쉰상
박물관 정원의 루쉰상

데스마스크, 시신의 관을 덮었던 ‘민족혼’이라는 글씨가 적힌 명정(銘旌), 그리고 『아Q정전』의 판화집을 끝으로 전시는 끝난다. 몇 년 전부터 이곳이 북경 신문화운동기념관과 병합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문화운동의 전설격인 그를 생각하면 관람의 시너지효과는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루쉰 작품의 제목을 새겨 놓은 로비 벽면
로비 벽면

박물관이 지나간 과거를 모두 증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과 작은 전시장 속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거니는 동안, ‘과거 없이는 우리는 미래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는 그들의 울림에 나는 무릎을 쳤다. 아무리 멱살 잡혀도 당당한 것은 도도한 시간이었음을 한창기와 루쉰의 지나간 시간들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외우고 애써 느끼고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물 흐르듯 그들을 만나고 나니, 심장은 뛰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한 사람을 기억나게 하는 박물관은 그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시켜 주는 현장인지, 그가 아직 살아있는 듯 느끼게 하는 현장인지는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책상과 의자로 루쉰의 생애를 표현한 전시장
루쉰의 생애를 표현한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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