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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물관 이야기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전쟁박물관 ‘무명용사의 묘’

by 뽀키2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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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오타와의 캐나다전쟁박물관은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비미 리지 전투(Battle of Vimy Ridge)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캐나다 전쟁박물관
캐나다 전쟁박물관과 지붕에 세겨진 Lest we forget(잊지 않기 위하여)을 의미한다는 모스부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한 캐나다 군대가 프랑스 비미 리지에 참전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특별전이다.당시 캐나다 참전 용사들은 전략 요충지 비미 능선을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이 전투에서 영국연방 최초로 참전해 장렬하게 전사한 이들의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사흘 동안의 전투에서 3,600명이 전사했고 7,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같은 희생으로 얻은 전공 덕분에 캐나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조약의 서명국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비미가 ‘세계 속에서 캐나다가 탄생한 장소’라 평가받는 이유다.

캐나다전쟁박물관에 재현된 비미전투 기념비, 조각상 정의(Justice), 비미전투 100주년 기념도록
캐나다전쟁박물관에 재현된 비미전투 기념비, 조각상 정의(Justice), 비미전투 100주년 기념도록

1922년 12월, 프랑스 정부는 그 땅 비미에 캐나다 전사자를 위한 추모공간을 기꺼이 내주었다. 1936년 11년간의 작업 끝에 캐나다 조각가 월터 올워드 (Walter Seymour Allward)가 제작한 비미 기념비가 세워졌다. ‘캐나다가 쓰러진 아들들을 애도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여신풍의 조각상 ‘정의(Justice)’ 가 전형적인 마터 돌로로사(상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자신의 이마를 칼자루에 기대고 서 있고, 벽면에 캐나다 전사자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이 기념비는 세계적인 전쟁기념물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비미를 기억한다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 없는 놀라운 추모공간이 캐나다 전쟁박물관에 있다.

11월 11일 낮 11시, 무명용사의 묘비에 비치는 햇빛
11월 11일 낮 11시, 메모리얼홀의 무명용사의 묘비에 비치는 햇빛

차분한 추모와 성찰을 위한 장소로 알려진 ‘메모리얼 홀’이다.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은 좁고 경사진 회랑으로 이어져 있는데 전시물이라곤 딱 하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잃은 무명용사의 묘비 1기뿐이다. 하지만 그 앞에 선 관객의 가슴에는 압도적인 규모의 피라미드나 인류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영웅의 무덤 앞에 선 것보다 더 웅장한 감동이 서늘하게 울려온다.

캐나다전쟁박물관 메모리얼 홀 입구
캐나다전쟁박물관 메모리얼 홀 입구

11월 11일은 캐나다의 현충일인 리멤버런스 데이(Remembrance Day)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1일을 기리는 의미에서 정해진 날이다. 공식적으로 교전이 종식된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면 이곳 메모리얼홀의 높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온 햇살이 홀로 놓인 무명용사의 묘비를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이 묘비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들판에 남겨진 캐나다 병사 6,846명 중 한 사람의 것이다. 그것이 비미 리지 인근 카바레루즈 묘지로 옮겨졌다가 지난 2000년 이 캐나다전쟁박물관으로 왔다.왔다. 캐나다는여러 전쟁을 통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고, 캐나다 국민들은 전장에서 스러져간 안타까운 생명을 마땅히 추모하고 가슴속 깊이 기억하고 있다. 태양계의 궤도가 교란되지 않는 한 11월 11일 11시의 그 햇빛은 영원히 그곳 을 비추게 될 거라는 믿음이 놀라웠다. 1953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의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명문(名文)으로 기억되던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1892-1973)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구절을 문득 생각했다. 죽은 새를 비추는 초추(初秋)의 양광(陽光)과 무명용사의 묘비를 비추는 햇빛이 다를 바 없음을 알겠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지난 시대의 상처를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곳 전쟁박물관에 들어온 모든 관람객들은 이 묘비 앞에서 한층 숙연해진 자세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전쟁박물관을 나오면 박물관의 건물 지붕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6만여 명의 병사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국회의사당의 ‘평화의 탑’을 향해 경사면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 모스부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창문의 배열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Lest we forget(잊지 않기 위하여)’을 의미한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끝까지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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