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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사회적 가난

by 뽀키2 2025. 5. 5.

작가 프로필

2016년 칸(Cannes)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켄 로치 감독)의 몇몇 장면을 기억한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 영감이 남기는 마지막 편지의 문구는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 영화는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뜬 서류 내용을 채워 넣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는 사회의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 디지털 격차)를 서늘하게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다. 

  "자존감을 잃으면 끝장이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 말 또한, 직접적으로 ‘디지털 디바이드’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기술을 다룰 줄 모르면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될지도 모를 노동계층의 어려움과 그들의 좌절감을 대변하는 핵심적인 장면에서 불쑥 등장한다. “난 연필 시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라고 외치는 이 주인공의 수난은 ‘이제부터’라는 짐작이 들었다. 영화는 디지털 디바이드가 빈곤층과 취약계층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강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자신을 단순히 시스템 속의 "데이터"로 취급하는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그는 마침내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권리를 요구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적인 돌봄’은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한 개인의 투쟁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디지털 디바이드’와 싸우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절박한 선언처럼 다가왔다.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말은 1995년 미국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 개리 앤드루 풀(Gary Andrew Poole)이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의미하는 용어’로 처음 사용했고, 미국 상무부가 펴내는 정책보고서에 공식적으로 언급되면서 논의가 확산된 것이다.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었으며, 이제는 ‘불편함’의 문제가 아닌 ‘불이익’의 문제로 다가와 ‘불평등’의 문제로까지 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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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포스터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등에서, 역사를 통틀어 사회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난을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생물학적 가난(Biological Poverty)’과 ‘사회적 가난(Social Poverty)’이 그것이다. ‘사회적 가난’은 바로 ‘디지털 디바이드’를 말하는데, 그걸 ‘정보의 격차’로만 이야기할 수 없으며,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배우려 들지 않는 노인 문제’로 볼 수는 더더욱 없다. 디지털 시대에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의 간극을 통칭하면서, 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상대적 빈곤을 가리키는 말, 바로 ‘사회적 가난’이 되었다. 

  ‘사회적 가난’은 정치적 무력감과도 연결되어 있어,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을 넘어, 반드시 정치적·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는 있어도, 사회적 소속감을 잃고 소외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단순히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변해버리는 처지가 ‘사회적 가난’의 본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보와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는 것, 경제적으로 ‘쓸모없는 계급’으로 전락하는 것, 그리고 정치적 권력을 잃고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인 셈이다. 이건 ‘정보격차’의 문제가 ‘사회적 격차(Social Divide)’로 변하면서, 무수한 문제와 맞닥뜨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두려워하거나 과거의 방법만 고집한다면, 우리는 도태되어 미래에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위중한 사회적 병리인데도 ‘디지털’이라는 용어 때문에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로만 본다는 건 무척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사회적 불평등이 사라진다고 해도 디지털 격차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침묵은 쌓이고, 증폭되고, 망각으로 이어진다. 세계가 지식정보사회로 변해가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IT의 격차가 독특한 침묵의 디지털 디바이드를 어떻게 만들어 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디바이드’(격차)라는 말에 주목한다면, ‘문화예술 디바이드(Arts & Culture Divide)’도 분명히 존재한다. 또 하나의 ‘사회적 가난’이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 디바이드가 기술 접근성의 차이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처럼, ‘예술 및 문화 격차’도 사람들이 경제적, 지역적, 사회적 이유로 예술과 문화를 경험하거나 창작할 기회에서 차별을 겪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연 문화의 도시, 뮤지컬의 도시, 오페라 축제의 도시,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등에도 예술과 문화가 일부 계층만을 위한 특권이 되는 현상이 분명 초래될 수 있지 않을까.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동등하게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포용적 예술 정책의 절실함과, 엎질러진 물이 되지 않도록 공공재로 접근하는 진지한 담론 등이 꼭 필요하다는 고언을 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생산을 원하는 시대가 거침없이 지나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더 유용한 정보를 ‘어떻게 골라내고 얼마나 누릴 것인가’, 더 큰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를 묻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정보격차’의 문제가 ‘사회적 격차(Social Divide)’로 변하면서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자와 원하지 않는 자의 문제로 바뀌게 될 거라는 경고에 나만 섬뜩한 건 아닐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선택’에 지쳐 있다.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가치 있는 정보를 찾기란 오히려 어려워졌다고들 말한다. 정보가 많아진다는 말은 그만큼 이용하기 힘들어진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 막막하다. 이 무거운 무게를 사회적 가난뱅이들이 어찌 견디겠나. 지고 가려니 너무 무겁고, 두고 가려니 캄캄한 밤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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