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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오늘부터 O형(型)입니다’

by 뽀키2 2025. 6. 30.

 

부끄러운 고백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중학 2학년 때부터 한 20년 동안 나의 혈액형이 A형인 줄 알았다. 수혈이 필요한 큰 사고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했었냐’는 야단도 많이 맞았다. ‘혈액형으로 보는 오늘의 운세’도 A형으로 찾아보았고, 대중잡지에 늘 실리는, ‘성격을 맞춰보는 코너’도 늘 A형으로 대입시켜 찾았었다. 혈액형이란 평생 변하지 않는 선천적인 유전정보여서 언제나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였지만, 나는 그저 그런 정보쯤으로 알고, 배려심 많고 예의 바르다는 장점과, 걱정 많고 소심하며, 변화에 약하다는 단점을 가진, 맞춤형 ‘A형 인간’으로 크게 엉기지 않고 그냥 살았다.

  30년 전 쯤으로 기억되는 직장신체검사일. 대형병원에서 온 검진차량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문진과 채혈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면서 한 바퀴 돌고 나면 간단한 결과를 통보받고 끝나는 일정인데, 차트를 유심히 보던 간호사가 뭔가를 확인하듯 내게 물었다. 

혈액형이 뭔가요? 
A형입니다.
농담하지 마시고, 다시 말씀하세요!
A형이라니까요!
그럼, 오늘부터 O형(型)입니다.

  간호사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내 마음에 비수처럼 박혔다. 여기저기에서 회사직원들의 웃음보가 터졌고, 나는 한동안 별의별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충격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오랫동안 ‘옳다’고 믿었던 사실이 ‘틀렸다’고 밝혀진 경우는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마젤란의 세계 일주 등으로 확정된,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연구로 입증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 소화의 많은 부분은 위가 아닌 소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인간 유전자는 약 2만~2만5천 개 정도로, 옥수수나 어떤 벌레보다도 적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은 매우 쉽게 왜곡되고, 가짜 기억도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 등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 사람들은 논리적 분석이나 사실에 근거해 판단을 내려야 할 때조차 과거의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서 판단을 내린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2024)은 이런 현상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불렀다. ‘휴리스틱’은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문제를 풀게 해주는 매우 효과적인 판단기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휴리스틱’의 힘은 너무 강력해 작동해서는 안되는 경우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오판을 하게 만든다.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결정을 내릴 때 활용할 지식은 늘 단편적이며 그마저도 불완전한 예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고정관념, 상식, 통념 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특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패턴을 따르려는 심리에 기대서서. 새로운 사실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더 믿을 만하다’고 느끼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어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만 다르게 생각해도 될까’하는 불안감이 작용한다. 게다가 오랫동안 믿어 온 것이 ‘정답’처럼 느껴져서,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을 일으킬 감정은 늘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익숙함의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덧붙이자면, 학교, 언론, 가족 등에게서 반복적으로 주입된 상식 또한 ‘정답’처럼 학습되며,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는데…”처럼 비판적 사고 없이 받아들인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조차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 예측하지 못한 순서로 온다 … 스마트 사회가 이렇게 빨리 앞당겨질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21세기 문맹인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울 수 없고, 배우지 않고, 다시 배울 수 없는 사람이다’는 말로 광범위한 정보시스템이 겪는 어려움을 말했었다. 분명한 것은, 엄청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마저도 ‘나만 모르는 혁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작은 지식 쌓기가 시작이 아닌 종착점이 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으로써 오히려 넘쳐나는 디지털 정보의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AI 등, 아무리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다 하더라도, 잘못 축적된 정보가 상황을 오판하지 않도록, 특히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는 ‘윤리적 판단’을 잘 내리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바로 ‘트롤리 딜레마’(아무것을 안 해도 사람이 죽고, 뭔가를 해도 사람이 죽는 딜레마)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건 윤리학의 고전적 문제다.

  예를 들면, 무단 횡단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자율주행차량을 가로막았을 경우 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핸들을 꺾으면 운전자가 죽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리주의 가치를 따르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운전자를 죽이는 게 옳을 수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량은 상품이기 때문에 타인을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상품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선 운전자를 우선 보호하는 방침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운전자를 살리기 위해 다수의 무단 횡단자를 죽이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데이터 수집을 통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규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대목에서 아찔하고도, 서늘한 쾌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비판적 사고, 대화의 훈련이 부족할 경우, 왜 고정관념을 깨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다양한 관점을 접하는 훈련이 충분하지 않으면, 기존 믿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왜?”라는 질문을 습관화해서, 다양한 정보 채널을 십분 활용하고, 자신의 신념을 잠시 ‘보류’하고 주위를 관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늘 덜 후회하는 결정을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제발, 그래야 한다. 이참에 혈액형 확인으로 인생관도 한번 재점검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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