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브루클린아트도서관에 들어서면서 나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미술관과 도서관과 박물관과 갤러리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느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만든 수만 점의 사연 있는 그림들이 모여 있다기에 ‘세계의 천재작가들이 책을 만들어 봉헌하는 곳’이거나 ‘세계 그림쟁이들이 여행길에서 만난 특별한 시간을 모은 곳’이겠거니 했는데 그런 지레짐작은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130개국 3만여 명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가 보내온 4만 5,000권 이상의 스케치북과 2만 권 이상의 디지털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이 도서관은 지난 13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스케치북’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성장해서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나아가 단절된 예술 경력을 이어주기까지 하고 있다. 인쇄업자인 스티븐 피터먼와 웹 개발자인 쉐인 저커는 2006년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전 세계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감상하는 ‘스케치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보통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그 목표를 지나 예상을 뛰어넘는 다소 황당한 미술관을 얻어냈다. 창의적인 공동체가 예술가 개인보다 더 큰 창의성을 발휘해 이로부터 전통적인 갤러리나 뮤지엄과는 다른 방식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 있는 아득한 욕구의 교차점에 선 우리 앞에서 이 도서관은 전혀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이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은 빈 스케치북을 선택해 그것에 자신의 주제에 맞는 그림을 채우고 자신의 이력과 독특한 내용을 함께 담아 온라인에 연결한다. 도서관에서는 이것들을 기발한 목록으로 분류해 방문객들이 다채롭게 구경할 수 있게 해둔다. 방문객들은 무료로 받은 도서관 카드를 스캔해 가로 5인치, 세로 7인치, 총 32쪽의 스케치북 갈피에서 ‘누군가의 삶에서 뛰쳐나온 순간’을 만날 수 있다. 한 번에 두 권의 스케치북을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예술가의 이름이나 주제·나라에 따른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크라우드 소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되어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또 다른 이들과 공유되고 있다. 브루클린아트도서관은 ‘북모바일(Bookmobile)’이라는 의미 있는 이벤트도 진 행하고 있다. 소장 스케치북 500~800권 정도를 엄선, 앙증맞은 삼륜차에 싣고 학교나 기업현장을 찾아가 새로운 관람객에게 펼쳐 보이는 프로젝트다.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홍보하는 ‘현대판 예술보부상’인 셈이다. 학생들은 거기에서 창의성을, 기업들은 글로벌한 영감을 자극받는다.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려 뽑은 그림들로 만든 책을 제공하거나, 나름대로 정한 주제로 대화형 플랫폼을 만들어 참가자들의 예술적 경험치를 높여준다. 창의적인 기업을 말하려면 이만한 글로벌한 워크숍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북모바일’은 오늘도 세계의 유명도시를 방문 중이다. 돌아오면 7,500권의 스케치북이 다시 컬렉션에 더해질 것이다. 피터먼과 저커는 2010년에 지금의 윌리엄스버그로 그 창의적 플랫폼을 옮겼다. 브루클린아트도서관 이용자들은 누구든 25달러를 내면 32쪽의 빈 스케치북을 구입할 수 있다. 그 스케치북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 이곳으로 보내면 또 하나의 컬렉션에 더해지고,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여행도구가 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곳을 다녀온 이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네 이야기를 나누고, 네 그림을 그리고, 그냥 그것을 나눠주라”는 귓속말이 “당신도 예술가가 될 수 있어!”로 들리는 마법에 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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