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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물관 이야기

‘생거진천’의 필연으로 세워진 충북 진천 종(鐘)박물관

by 뽀키2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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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석장리는 국내 최초, 4세기쯤으로 추정되는 고대 철 생산 유적지가 발견된 곳이다.

종박뭉관 전시장
전시장

이런 유서로 진천 군립(郡立) 종박물관이 2005년 문을 열었고, 2012년에는 주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 원광식 장인이 지닌 기술을 일반인들도 접하게끔 전수교육관도 개관되었다. 전시실은 ‘종의 탄생’으로부터 ‘범종의 역사’, ‘성덕대왕신종 주조과정’, ‘한국 종의 비밀’, ‘세계의 종’ 등으로 이어진다. 종으로 우리의 역사가 설명되고 전통미학에 우리 과학까지 가늠할 수 있음에 놀라움이 더해진다. 한국 범종의 역사, 소리의 신비, 합금의 비밀 등을 한자리에서 알게 되기란 쉽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종 11기 중 5기가 일본에 있는 내력, 세계의 종소리로 피치와 템포를 분석해 만든 공식에 대입해 최고의 화음값을 얻은 사연, 독특한 음통과 일정한 배열의 음향학적 설비를 갖추고 있는 우리 종의 과학성 등 우리 종의 복잡 다단한 비밀을 다 알려주는 곳이 바로 이 종박물관이다.

주철장 원광식이 재현한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

한국종을 비롯한 동양의 종들은 밖에서 두들겨 소리를 낸다. 공기를 울려 소리를 내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대신 서양 종은 안에서 울리기 때문에 밖으로 들리는 소리가 범종보다 농밀하지 못해 마치 아우성처럼 들린다. 이처럼 종소리로 동서양의 차이를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범종은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최대로 커지는 주기적인 음의 변화(맥놀이)가 계속되는데, 종의 좌우균형이 맞지 않으면 맥놀이 또한 불완전하게 된다. 그래서 종을 치면서 음의 변화가 완벽해질 때까지 종 안쪽을 깎아낸다.

거푸집을 만드는 과정
거푸집을 땅에 묻고 비천상을 돋을새김할 거푸집을 만드는 과정

물론 어디를 얼마만큼 깎아내야 완벽한 소리를 내는지 알아내는 것도 ‘구조진동 해석’이 적용되는 ‘과학’이지만, 깜깜한 종 안에서 구도자의 마음으로 일승원음(一乘圓音)을 찾아내는 장인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범종의 맨 위에는 우리 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인 음통(音筒)이 있어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오고, 범종이 도리천을 울려 지옥중생을 깨우는 것, 과학이 이러한 범종의 신비를 낳은 셈이다. 종박물관은 그 범종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종의 특징인 용두와 만파식적을 형상화한 음관
신라종의 특징인 용두와 만파식적을 형상화한 음관

독특한 형태와 주금술,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우리 범종은 ‘Korean Bell’이라는 학명(學名)을 얻게 되었다. 용뉴에서부터 종신의 각 부분에 이르기까지 총집합된 우리 금속공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범종. 독일에서 온 어느 노학자는 경주의 성덕대왕신종을 보고 “이것만으로도 세계적인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30여 년 전, 나는 <한국의 범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얻은 소중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새벽예불 종송(鍾頌)으로 운문사의 새벽공기를 가르던 낭랑한 아미타경 독송, 범종소리를 녹음하느라 작대기로 무논을 치며 개구리울음을 잠재우던 일, 한쪽 눈을 실명시킨 쇳물과 질긴 인연을 잇고 있는 원광식 장인, 천상 종쟁이 김동국 장인, 맥놀이를 정리해 성덕대왕신종 소리를 전국에 보급한 국립극장 김용국 과장, 금속공학자로서 한국의 국내의 수많은 대종의 주조를 지휘한 ‘종박사’ 염영하 교수, 그리고 만나 뵐 때마다 “지극한 도는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고, 귀로 들어서는 들을 수 없다”며 성덕대왕신종 명문을 첫머리부터 외시던 고청(古靑) 윤경렬 선생까지. ‘생거진천(生居鎭川)’ 종박물관이라 그런지 유독 새삼스러웠다.

성덕대왕신종의 절정의 미학을 보여주는 비천상 부분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부분

이곳을 찾은 분들은 ‘생거진천대종각’에서 고래 모양의 당목으로 대종의 음관을 크게 한번 울려보고 종박물관으로 드시길. 그리고 우리 종의 현묘한 소리를 온 가슴에 담아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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