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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물관 이야기

‘담금질’의 교훈을 얻는 충북 음성 철(鐵)박물관

by 뽀키2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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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에서는 선사시대의 마지막 단계를 철기시대(鐵器時代)라 이른다. 대개 기원전 1200년경부터 700여 년 동안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아직도 철을 ‘산업의 쌀’이라 부르니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도 어쩌면 철기시대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철박물관 전경
철박물관 전경

이런 점에서 철박물관을 두고 인류의 회고취미에서 발의되고 구현된 공간으로 여겨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철박물관은 지난 2000 상상 이상의 (iron beyond imagination)’ 슬로건으로 하고 철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재인식하게 한다 미션을 품고 문을 열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집행이사로도 활약하는 장인경 관장은 동국철강 창업자  장경호 회장의 손녀. 박물관이  목소리를 단단히 내는 데는  이유가 분명함을 알겠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박물관 자리는 고려시대 몽고군을 무찌른 철제무기 생산장 다인철소(多仁鐵所)’ 있던 충주와 멀지 , 부지 마련이 그나마 어렵잖아 낙점됐다.

전시장 내부
전시장

철박물관의 드넓은 정원에는 국내 최초의 전기로(電氣爐) 계근대(計斤臺) 진열했다. 쇳물을 운반하는 거대한 손잡이인 훅(hook)은 근대 유물의 대표 격으로 당당하게  있다. 박물관 전체에 철의 역사에서부터 철을 만드는 ’ , ‘생활 속의 ’ , ‘철의 재활용’ , ‘철과 예술 등으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임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인류가 처음 사용한 철은 운석이다라는, 박물관 도록을 들추다 발견한  문장에 기가 꺾였다. 몇 만 광년을 불타며 날아온 별똥별에서 우리의 문명이 시작되었다니. 원소기호 Fe, 원자번호 26, 녹는점 1,535°C. 별들의 핵융합반응으로 생겨난 금속원소. 지구의 35% 차지하는 주요한 원소. 적어도 철박물관을 찾기 전까지 철은 내게 그저 원소기호로만 존재했다.

레이들(Ladle)과 손잡이 역할을 하는 후크
레이들과 후크

오늘의 세계는  불평등한 모습이 되었을까. 평화를 알리는 종소리와 잔인한 전쟁의 포성, 생명을 키워내는 쟁기와 생명을 파괴하는 ! 역사는 철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인류가 꿈꾸는 세상에는 언제나 철이 있었다. 철 위를 거닐고, 철에 기대고,  속에 머물러 살고 있지 않은가. 철은 장 뜨거운 곳에서, 가장 강인한 정신으로 태어나 가장 오랜 역사를 만들고 가장 값진 삶을 일구었다. 그러는 사이 더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철을 파괴의 도구로 만들어버렸고,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오히려 고맙게도 철로 지구 온난화를 해소하고 화석 연료를 대체할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모루와 망치를 형상화한 박물관 앞뜰의 작품(김택기.홍지연.백승호. 2015년 작)
모루와 망치를 형상화한 박물관 앞뜰의 작품(김택기.홍지연.백승호. 2015년 작)

뜨거운 용광로의 열기와 차갑고 거칠며 무겁기만  물성이 아련한 삶의 향기 변한 전시실에서는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나 싶은 물건들이  기억에 실려 나를 향한다. 바늘·가위·자물쇠·경첩··호미·쟁기·가래·국수틀·참기름 ·붕어빵기계·빙수기계·고드렛돌·양철냄비 등에다 단군의 셋째 아들 부소(夫蘇) 불을 발명했다는 신화에서 이름 붙여졌다는 부시까지.  틈새에서 엿장 가위소리, 놋그릇을 ‘스뎅(?) 그릇’으로 바꾸던 어머니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블의 영화 <아이언 > 히트를 치면서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지만, 다리미 일본식 발음 아이롱이라 부르던 일도 생각났다.

상설전시실. 철의 탄생&#44; 생산&#44; 재활용 등 &lsquo;철의 역사&rsquo;를 알려준다.
상설전시실. 철의 탄생, 생산, 재활용 등 &lsquo;철의 역사&rsquo;를 알려준다.

오늘, 누구나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담금질’되어 있을 것 같은, 낡았지만 낡지 않은 철박물관을 다녀왔다. 철박물관에서는 언제나 세상일에 달아오른 마음을 스스로의 망치질로 식혀야 마땅하다. 아직도 ‘철기시대’이기 때문이다. 애써 만든 24쪽의 철박물관 체험지도 내공이 여간 아니다. 만일 어린이와 동행한다면 더욱 ‘철’들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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