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박물관 이야기20 삶의 방식에 한없이 솔직한 박물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이민박물관 역사의 혼탁한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 하나로 나는 ‘이민’을 들고 싶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원하면 갈 수 있는 땅이 있고, 원했지만 갈 수 없는 곳이 있고, 싫어도 쫓기듯 가야만 했던 곳이 있다. 망향가만 부르면서 돌아오지 못한 땅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울컥한 순정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시절의 바람기로도 가늠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의 현장이 되어버린 곳. 이제는 사회통합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논쟁들이 '이민박물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1770년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라는 개념으로 시작된 호주의 이민제도에는 ‘백호주의(白濠主義, White Australianism)’라는 선입견이 자리한다. 하지만 이 백호주의는.. 2023. 3. 21. 창의도시의 놀라운 역사와 산업의 이력서 시애틀 '역사산업박물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은 하이테크 기술을 자랑하는 비옥한 아이디어의 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코스트코·보잉·UPS·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있어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역사산업박물관(MOHAI)이 있다. 전 세계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그 기업들의 혁신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덕분에 미국에서도 가장 성장이 빠른 도시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애틀의 차별화된 라이프 스타일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창의도시 시애틀의 놀라운 이력서는 바로 시애틀 역사산업박물관(Museum of History & Industry) 즉 ‘모하이(MOHAI)’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19세기 초 작은 도시에서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하기까지 시애틀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세계 유명 회사들의 .. 2023. 3. 17. ‘인간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현장 미국 뉴욕 9/11메모리얼박물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사고를 지켜봤던 나에게 9/11 뉴욕 테러는 또 하나 망연자실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그게 어디 나뿐이랴. 2,977명의 희생자를 낸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테러는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은 사건일 것이다. 이제 그것은 9/11메모리얼박물관에서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현장’으로 남아 사람들을 맞고 있다. 사건의 순간을 전 세계가 동시에 인식한 전례 없는 현장. 그곳에는 사람들이 들려주고, 그들이 감싸고 있던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느 날 우연히 테드(TED)를 통해, 제이크 바튼(전시기획자. 미 ‘로컬 프로젝트’사 대표)의 짧은 강의를 보았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그가 주도한 ‘역사를 만들다’라는 프로젝트 이야기는 9/11메모리얼박물관.. 2023. 3. 16. 체험형 박물관의 새로운 전형 일본 모지코 간몬해협박물관 간몬해협은 일본 혼슈 서쪽 끝 항구인 시모노세키시(下関市)와 기타큐슈시 모지구(門司区 )사이의 해협이다. ‘하관(下関 )’에서 ‘관(関)’을 따고 ‘모지(門司)’에서 ‘문(門)’을 따 ‘간몬( 関門)’이라는 이름이 취해졌다. 규슈의 관문이자 혼슈로 가는 길목이고, 대한해협과 세토나이카이( 瀬戸内 海) 두 바다를 잇는 해상 통로로 수많은 컨테이너선과 여객선이 오고 간다. 폭이 좁고 유속이 빨라 그만큼 사고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해협을 건너는 간몬교가 있고, 그 바다 아래 해저로 간몬터널이 통한다. 모지코(門司区 )레트로 지구에는 이 해협을 테마로 문을 연 간몬해협박물관이 자리한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역사의 큰 무대였던 간몬해협의 장대한 이야기를 엮은 체험형 박물관으로 이 지구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다.. 2023. 3. 14. 보고 만들고 노는 데 충실해지는 곳, 일본 도쿄장난감박물관 이곳은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만든 박물관이다. 폐교를 활용했다는 점, 자연친화적이라는 점, 봉사자들이 운영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 반가워 달려간 곳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의 방식과는 아주 달랐다. 도쿄장난감박물관은 비영리활동법인 일본굿토이위원회(예술놀이창조협회)가 폐교된 신주쿠의 요츠야 제4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1984년 개관했다. 개관할 때 ‘한구좌관장’이라는 모금 프로그램을 통해 기부자들을 명예관장으로 모셨다. 여기에 자원봉사자들의 금쪽같은 시간들이 쌓였다. ‘세계의 장난감과 친구가 되자’는 슬로건으로 ‘보고, 만들고, 논다’는 세 가지 기능에 집중했다. 교실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수만 점의 장난감들이 펼쳐져 있다. 가라쿠리, 즉 전통 자동인형들도 빠지지 않는다. 마음을 치유하는 나무.. 2023. 3. 9. 시간의 향수를 파는 곳 일본 분고타카다 쇼와노마치 시간이 멈춘 마을, 일본 오이타현 분고타카다(豊後高田). 에도시대부터 쇼와 30년대까지 구니사키 반도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1950년대 옛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는 한 지방도시일뿐이다. 하지만 그곳의 쇼와노마치(昭和の町)는 ‘옛 정취가 그리울 때 꼭 한 번 가봐야 할 마을’로 꼽히고 있다. 그곳이 쇼와시대(1926~1989) 당시의 활기가 살아있는 따뜻하고 정겨운 마을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후쿠오카에서 JR닛포혼센(JR日豊本線)으로 2시간 남짓, 마을 어귀 낡은 버스 터미널과 조그만 대합실, 흑백 사진 속 빛바랜 추억으로 남은 건물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쇠락만 거듭하던 이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로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도시로 꼽힐 만큼 미래가 어두웠던 이 마을은 “언제 .. 2023. 3. 7.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전쟁박물관 ‘무명용사의 묘’ 2017년, 오타와의 캐나다전쟁박물관은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비미 리지 전투(Battle of Vimy Ridge)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한 캐나다 군대가 프랑스 비미 리지에 참전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특별전이다.당시 캐나다 참전 용사들은 전략 요충지 비미 능선을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이 전투에서 영국연방 최초로 참전해 장렬하게 전사한 이들의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사흘 동안의 전투에서 3,600명이 전사했고 7,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같은 희생으로 얻은 전공 덕분에 캐나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조약의 서명국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비미가 ‘세계 속에서 캐나다가 탄생한 장소’라 평.. 2023. 3. 6. 농업이 ‘창의적 재능’임을 알려주는 '캐나다농업식품박물관' 오타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명문 칼튼대학교와 다우스호수를 끼고돌면 캐나다농업식품박물관이 있다.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도심 속의 체험농장으로 인기 높은 이 박물관은 1886년에 설립한 ‘캐나다중앙실험농장’, 1889년에 개장한 ‘도미니언 수목원’과 함께 있다. 이곳에서는 독특한 농업유산과 전형적인 농경생활의 풍경을 만끽한다. 살아 있는 말·젖소·양·돼지·토끼 등을 직접 볼 수도 있다. 가축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 누구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야외의 에너지 파크(Energy Park)에서는 태양 에너지, 풍력 에너지, 수력 에너지 등 에너지의 원리를 배우고, 재생 에너지 기술이 캐나다 농업의 에너지 소비와 생산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 2023. 3. 2. 일본 교토 한자박물관, 한자문화의 넓은 스펙트럼 실감하다 백제로부터 한자를 전수받은 일본이 2016년 교토(京都)에 세계 처음으로 한자박물관을 개관했다. 교토 관광의 정점이라는 기온(祇園) 입구에 지상 2층으로 세워진 박물관은 1층에 4세기 백제 왕인(王仁)박사의 한자 전수에서 이어진 한자의 역사를 다양한 유물과 그림 등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늘 뉴스의 중심에 있는 ‘올해의 한자’도 볼 수 있었다. 2층은 부모와 자녀들이 다양한 게임이나 ‘갑골문자’를 활용한 디지털 프로그램을 통해 한자와 친숙해지면서 배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자칫 어렵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자라는 콘텐츠와 최첨단 IT가 만나서 펼쳐보이는 프로그램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자놀이의 세계에 빠지게 만든다. 한자말.. 2023. 2. 28. 한 인간의 생애를 빈틈없이 추억하기, 중국 베이징 '루쉰박물관' 베이징의 판자위엔(潘家园) 새벽시장에서 루쉰의 미니어처 하나를 100위안에 샀다. 이건 득템이야! 한족 청년의 꾀죄죄한 손에서 넘겨받은 루쉰을 호텔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어 빛 드는 곳에 두고 기분 좋게 박물관으로 향했다.「광인일기」·「아Q정전」의 작가 루쉰(魯迅 1881-1936)을 모르기는 쉽지 않다. 열병처럼 청춘을 앓던 사람들이 읽고 기운을 차렸던 중국 작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그러기에 중국 어느 도시든 쑨원을 기억하는 중산대로가 있듯 루쉰이 머문 곳마다 박물관이나 공원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베이징의 루쉰박물관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루쉰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루쉰은 베이징에서 12년간 살았다. 그가 살던 한족 전통가옥인 사합원 양식의 옛집(魯迅故居)이 복원되어 있고, 그 곁에 루쉰박물.. 2023. 2. 2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