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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물관 이야기

‘인간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현장 미국 뉴욕 9/11메모리얼박물관

by 뽀키2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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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사고를 지켜봤던 나에게 9/11 뉴욕 테러는 또 하나 망연자실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그게 어디 나뿐이랴. 2,977명의 희생자를 낸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테러는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은 사건일 것이다.

추모공원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
추모공원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

이제 그것은 9/11메모리얼박물관에서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현장’으로 남아 사람들을 맞고 있다. 사건의 순간을 전 세계가 동시에 인식한 전례 없는 현장. 그곳에는 사람들이 들려주고, 그들이 감싸고 있던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느 날 우연히 테드(TED)를 통해, 제이크 바튼(전시기획자. 미 ‘로컬 프로젝트’사 대표)의 짧은 강의를 보았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그가 주도한 ‘역사를 만들다’라는 프로젝트 이야기는 9/11메모리얼박물관에서는 알 수 없었던 전시기법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는 ‘우리는 기억합니다’라는 ‘열린 전시관’을 입구로 삼아 시간을 거슬러오를 수 있게 해 실제 그 당시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어둡고 긴 회랑을 지나는 동안 누군가가 말해 주는 역사를 ‘듣는 박물관’으로 만들고자, 현장 근처에서 테러를 목격한 417명의 증언으로 ‘오디오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사건 발생 24시간 동안 10억 명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극이 전해졌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역사란 과거의 목소리를 듣는 알음알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회랑을 빠져나오면,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의 한 구절이 떠난 자들을 위로한다. “시간이 지날지라도 그대들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9/11메모리얼뮤지엄 내부. 건물 잔해를 벽으로 옮겨놓았다.
9/11메모리얼뮤지엄 내부. 건물 잔해를 벽으로 옮겨놓았다.

박물관을 나오면 2011년 9월 11일 개장된 ‘9/11메모리얼파크’가 있다. 5,000:1의 경쟁을 뚫고 당선작으로 선정된 작품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가 우리를 맞는다. 쌍둥이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설치된 조형물인 2개의 폭포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테러로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과 미국인의 눈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외곽을 희생자들과 순직한 이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청동판이 둘러싸고 있다. 이스라엘 출신 건축자 마이클 아라드는 그 이름들을 차별이나 구획 없는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해 ‘이유 있는 침묵’을 드러냈다. 남은 자의 기억으로 떠난 자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다니. 얼핏 보기에는 기존 알파벳 순서를 파괴한 배열인 듯하지만, 사실은 서로 인연이 있던 희생자들끼리, 가족끼리 혹은 같은 직장에 출근해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박물관에 새겨진 로마의 서사시 한 구절 기억에서 지워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박물관에 새겨진 로마의 서사시 한 구절 기억에서 지워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알고리즘을 만들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입력해서 서로 다른 이름을 모두 연결 지었다. 그렇게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던 것 같은, 익명이었던 이름들이 하나하나의 삶으로 현실화된다. “너를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라고 한 사장과 직원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3,000여 명의 이름들이 사회적 관계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이러한 연관성을 반영하기 위해 폭포 가장자리에 의미 있는 이름들을 배열했다. 죽은 자의 흔적이 산 자의 기억과 이어진 9/11메모리얼박물관. 나는 그곳을 들어서면서부터 어떤 느낌의 울컥거림 때문에 관람 내내 힘이 들었다. 이곳을 ‘월드 트라우마 센터(World Trauma Center)’로 생각하는 못난 사람들에게 『월 스트리트 저널』이 ‘사람 사이의 관계로 가득 차 있는 박물관’이라고 평한 까닭을 애써 가르쳐주고 싶었다.

뮤지엄 건축물 형태를 새겨넣어 만든 기념품들
뮤지엄 건축물 형태를 새겨넣어 만든 기념품들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기억하는 일

어떤 개인에게는 자신이 겪은 전쟁이나 테러 같은 경험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 자체로 또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는 스스로 행한 가학의 경험을 끝없이 되살리며 그것이 주는 교훈을 얻고 그로부터 거듭날 인류사를 성찰해 왔다. 박물관은 이러한 과정을 사람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풀어내면서 거기서 놀랍도록 인간적인 방법이 나왔음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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