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몬해협은 일본 혼슈 서쪽 끝 항구인 시모노세키시(下関市)와 기타큐슈시 모지구(門司区 )사이의 해협이다. ‘하관(下関 )’에서 ‘관(関)’을 따고 ‘모지(門司)’에서 ‘문(門)’을 따 ‘간몬( 関門)’이라는 이름이 취해졌다.
규슈의 관문이자 혼슈로 가는 길목이고, 대한해협과 세토나이카이( 瀬戸内 海) 두 바다를 잇는 해상 통로로 수많은 컨테이너선과 여객선이 오고 간다. 폭이 좁고 유속이 빨라 그만큼 사고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해협을 건너는 간몬교가 있고, 그 바다 아래 해저로 간몬터널이 통한다. 모지코(門司区 )레트로 지구에는 이 해협을 테마로 문을 연 간몬해협박물관이 자리한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역사의 큰 무대였던 간몬해협의 장대한 이야기를 엮은 체험형 박물관으로 이 지구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다.
2003년 처음에는 생긴 모습을 따서 ‘해협드라마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가 2018년부터 1년 반 동안 10억 엔의 예산을 투입, 리모델링을 하고 체험거리를 늘려 2019년 9월, 지금의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해협의 역사·자연·문화를 영상이나 게임을 통해 다양하고 드라마틱하게 체감할 수 있는 시설로 탈바꿈 한 것이다. 박물관은 5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의 고층형 박물관들이 그렇듯이 4층으로 올라가서 1층으로 내려오며 관람하는 구조다. 2층에서 4층까지 뚫린 ‘해협 아트리움’은 해협의 역사를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영상으로 재현해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8×9m의 거대한 돛 모양의 스크린은 압도적인 영상미로 해협의 다양한 매력을 전한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바다생물들의 컬러풀 한 판타지를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한 모지코의 변천을 역동적인 모노로그로, 1185년의 단노우라 전투(壇の浦戰鬪)와 1863년의 바칸전쟁(馬関戰爭)을 최첨단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데, 그 영상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사람들은 나선형 슬로프를 오르면서 30분 간격으로 상영되는 총 8분 길이의 그 영상들을 기꺼이 관람하게 된다. 3층 ‘해협역사회랑’에서는 혼슈와 규슈가 갈라졌다는 전설에서부터 시대의 변화를 부른 수많은 사건의 무대가 된 이곳의 이야기를 정교한 인형으로 재현하고 있다. 간몬해협에서 일어난 헤이안시대 말기의 단노우라 전투, 시모노세키 전쟁으로 불리는 바칸전쟁 등도 재현되어 있는데, 어떻게 인형으로 그 장대한 역사의 드라마가 제대로 표현되겠냐고 반문한다면 그건 기우. 일본과 체코 등의 저명한 인형작가 10명이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형을 통해 해협의 역사와 풍경을 감동으로 되살려냈으니 말이다.
1층은 1900년대 초반 다이쇼(大正)시대를 재현한 ‘해협레트로’ 거리로 꾸며져 있다. 다이쇼시대 국제무역으로 번성했던 모지코의 거리 일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공간이다. 모지코가 바나나를 맨 처음 수입한 곳임을 알려주는 재미난 풍경, 전차(電車)가 있고 상인들이 흥정하는 거리의 모습 등을 사실적인 단색조의 조형물로 보여주고 있다. 방문객들은 항구도시 모지코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천장에 달린 수십 개의 조명이 연출하는 푸른 하늘과 노을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 풍경 속에 거리의 화가·바나나장수·영화관·선술집 등이 지난날의 흥청거림을 느끼게 한다. 자연스레 지역의 역사를 알게 하는 전시기법이 돋보인다. 일본 각지에서 복고풍 경관이나 체험으로 경제효과를 올리게 되면서 유사한 시설들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지만, 실내공간에 이처럼 잘 짜놓은 곳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수준이면 오사카의 ‘생활의 금석관(今昔館)’에 견주어 뒤질 게 없다.
5층의 ‘프롬나드 데크’에는 호화 여객선의 갑판을 본뜬 라운지 카페가 있고, 5층에는 간몬해협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리나 테라스 가이토’가 성업 중이다. 해상보안청의 PR코너와 영화자료관인 ‘영송문고’를 소개하는 코너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간몬해협의 매력을 알리면서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을 모으는 데 제몫을 다한다. 욕심을 잔뜩 낸 공간이지만 흠잡을 데가 없었다. 오로지 ‘간몬해협’ 그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곳, 다양한 콘텐츠들을 ‘기-승전-해협’으로 모아놓은 곳.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망라된 ‘원 소스 멀티 유즈 (OSMU)’의 교과서 같은 박물관을 나서면서 짐짓 ‘제3의 장소’라 여겼던 모지코 레트로의 가치를 다시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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