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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물관 이야기

삶의 방식에 한없이 솔직한 박물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이민박물관

by 뽀키2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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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혼탁한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 하나로 나는 ‘이민’을 들고 싶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원하면 갈 수 있는 땅이 있고, 원했지만 갈 수 없는 곳이 있고, 싫어도 쫓기듯 가야만 했던 곳이 있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이민박물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이민박물관

망향가만 부르면서 돌아오지 못한 땅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울컥한 순정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시절의 바람기로도 가늠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의 현장이 되어버린 곳. 이제는 사회통합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논쟁들이 '이민박물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1770년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라는 개념으로 시작된 호주의 이민제도에는 ‘백호주의(白濠主義, White Australianism)’라는 선입견이 자리한다. 하지만 이 백호주의는 1973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폐지된 옛 법이다. 그 후 호주의 이민자들은 증가일로였다. 한동안 규제가 강화된 적도 있지만 최근 경기 활성화에 따른 노동 수요 급증으로 이민자도 크게 증가했다.

이민을 떠나는 더블린 사람들을 담은 데이빗 모나한의 
기획사진전 ‘더블린을 떠나며’ 홍보물
이민을 떠나는 더블린 사람들을 담은 데이빗 모나한의 기획사진전 ‘더블린을 떠나며’ 홍보물

호주 역사 전체로 보면 전 세계 90개국 사람들이 지난 200년간 더 나은 삶을 찾아, 일거리를 찾아, 또는 전란을 피해 새로운땅 호주로 찾아든 셈이다. 야라(Yarra) 강에서 가까운 멜버른 도심의 ‘빅토리아이민박물관’. 1998년 낡은 세관 건물을 복원해 호주 빅토리아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운 이곳의 슬로건은 ‘우리의 다양성과 문화를 보라!’이다. 이민자들의 제2의 고향이 되기 위해 문화의 다양한 태피스트리(tapestry)를 탐험하게 만드는 이 박물관에는 그들만의 이야기와 다채로운 축제가 새겨져 있었다. 축제 정원에서는 음식·음악·문화가 살아있는 즐거운 축제가 열린다. 각국의 이민자들을 기리는 보호구역이자, 개성이나 다름을 반기고 추구하는 곳이 바로 호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곳이다.

폐품으로 비행기를 만들며 이민을 추억하는 방문객들

상상의 체험공간으로 이루어진 로비는 이민자들의 출발점을 환기시켜 준다. 폐품을 활용해 각양각색의 비행기를 만들어 달아두게 한다. 자신을 낯선 땅으로 데리고 온 비행기를 추억하면서, 이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끔 하는 계산된 체험공간이다.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17미터 높이의 복제된 이민선에 오르면 1840년대식으로 꾸며진 비좁은 3등 선실과 1900년대식 증기선의 호화로운 2등실, 1950년대식 원양여객선 객실 등을 서로 비교하면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대륙에 대한 설렘을 안고 실려온 기나긴 항해를 체험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빅토리아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터랙티브 영상을 이용한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관람객들은 영상을 보며 1800년대에 빅토리아주로 이주해 오늘에 이른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꿈과 성공, 좌절에 공감하게 된다. 이 박물관 역시 다른 이민박물관처럼 ‘기억해야 할 과거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여행’을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그 여행은 매우 특별한 인식과 체험을 제공한다. 멜버른 내 80여 개의 건물과 볼거리를 둘러보는 역사기행 ‘골든 마일 헤리티지 트레일(Golden Mile Heritage Trail)’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그늘진 삶과, 예감하지 않았던 환희가 한데 뒤섞여 있는 빅토리아주의 다문화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태어난 나라를 왜 떠나는가,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제 나라를 떠나 살기로 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 질문의 예리한 칼날을 비켜갈 수 없다. 이 박물관은 이러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체험을 통해 보여주고 들려주려 애쓰고 있어 이민자의 가슴 한편에 못 박혀 있는 미안함과 그리움을 달래준다.

옛 이민시절 기록사진에 뚫어놓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방문객들이 당시 이민자들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옛 이민시절 기록사진에 뚫어놓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방문객들이 당시 이민자들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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