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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물관 이야기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치는 공간, 서울 쉼박물관

by 뽀키2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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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죽어서 가는 세상이 있다 하니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쉬다 가는 것이 맞을 거란 생각과, 기척 없이 계신 걸로 보아 그야말로 촛불 꺼지듯 가버렸다는 생각에 마침표와 같을 거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전시장 내부
전시장 내부

‘아름다운 마침’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 있다. 2007년 10월, 개관기념전 ‘상상 너머’를 열면서 탄생한 서울 홍지동의 쉼 박물관이다. 죽음은 꽃상여 타고 기쁘게 쉬러 가는 것이라는 옛사람들의 철학을 그 이름에 담아 ‘죽음’을 문화로 보여주는 장례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전통 상여(喪輿)와 혼백을 운반했던 요여(腰輿), 상여를 장식한 각종 꼭두와 용수판 등을 통해 조상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006년에 남편을 먼저 보내면서 죽음의 다른 면을 본 박기옥 이사장은 솟아오르는 슬픔 한쪽으로 “아, 이 사람이 편히 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1년 뒤, 40년 살아온 자신의 집을 박물관으로 열었다. 박물관은 1층(상여 전시실, 요여 전시실, 꼭두 테마 전시실, 용수판 전시실)과 2층(‘날짐승 모양의 상여장식’ 전시실)으로 구분돼 있다.

요여(腰輿) 전시물
요여(腰輿) 전시물

상여전시실에는 연꽃·봉황·쌍룡 등 각종 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집모양의 상여가 자리하고 있다. 경남 진주의 어느 부잣집에서 쓰던 거란다. 이승에서 누리지 못했던 행복과 기쁨을 마지막 가는 길에 누리도록 했다. 육신은 산에 묻히지만 그 혼은 집으로 돌아와 빈소에 머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작은 가마인 요여(腰輿)도 볼 수 있다. 전통가옥 지붕의 용마루처럼 전통 목상여의 상단 앞뒤에 부착하는 반달 모양의 용머리 장식 ‘용수판(龍首板)’은 예술품에 버금간다. 이 박물관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유물로는 윤열수 한국박물관협회장이 기증한 부고장 뭉치가 있다. 30여 년간 모은 부고장에는 망자들의 발병 사유 및 사망 날짜들이 기록되어 있다. 근대의 부고방식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한국박물관협회 윤열수 회장이 30여년 모은 부고(訃告) 기증물
한국박물관협회 윤열수 회장이 30여년 모은 부고(訃告) 기증물

장례를 주제로 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가 말해주듯, 죽음이라는 것이 그저 엄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로하는 ‘축제’라는 생각으로, 2대 관장을 맡은 설립자의 딸 남은정 작가와 함께 지금까지 기획해 온 작품전이나 퍼포먼스도 예사롭지 않았고, 빠짐없이 각광을 받았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을 피하지만 박물관에서 죽음을 사유하게 되는 방식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치는 공간.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을 치유하는 공간. 그곳에서 ‘죽음은 쉼’이라는 믿음이 우리의 삶을 더욱 강한 에너지로 채워준다고 믿게 되었다. 

상여(喪輿) 전시물
상여(喪輿)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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