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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물관 이야기

낮은 목소리의 마지막 역사교실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

by 뽀키2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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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UN 등에서는 그 본질을 잘 드러내주는 ‘성노예’(sexual slave) 또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1998년 8월 개관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은 세계 첫 일본군‘위안부’ 박물관이다.

나눔의 집 제4전시공간인 기록의 장
나눔의 집 제4전시공간인 기록의 장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이 처음 서울에 들어선 것은 1992년이었다. 3년 뒤 ‘나눔의 집’은 경기도 광주로 옮겨졌다. 바로 이곳에 ㈜대동주택의 기증으로 1998년 8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처음 세워졌다. 2017년에는 유품전시관과 추모기록관을 둔 제2역사관을 개관했다. 할머니생활관, 교육관을 비롯해 모두 10개의 전시장과 다양한 추모공간으로 조성된 이곳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 현장’이다. ‘증언과 체험의 장’, ‘기억과 기록의 장’으로 나눠져 숨은 역사의 칼날을 벼리면서 기록의 간극을 메꿀 기억 재생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눔의 집 입구.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흉상들.
나눔의 집 입구.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흉상들.

2017년 개봉한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국민이 만든 기적의 영화’라는 평을 들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 전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의 속편인데, 그 한자(漢字) 타이틀이 ‘鬼鄕’이었다. ‘귀신이 되어서도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이 믿을 수 없이 통렬한 비극을 시로, 소설로, 연극으로, 영화로 전해 왔다. 할머니들은 강연을 통해,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수요집회’ 등에 모여 쉰 목청을 높여온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12·28 한일합의, 화해·치유재단, 10억 엔…. 그 비루한 핑계들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슬픔과 통한의 역사가 지워진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2020년 3월 대구의 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제 남은 이는 더 줄어들었다.

제2역사관 추모공원 뒤 담벼락 풍경. 방문객들이 직접 쓴 추모 메시지가 노란 나비처럼 빼곡하게 달려 있다.
제2역사관 추모공원 뒤 담벼락 풍경. 방문객들이 직접 쓴 추모 메시지가 노란 나비처럼 빼곡하게 달려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어떻게든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려 했다. 하지만 고 김학순할머니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공개 증언 이후 세계의 관련 단체들과 피해자들은 꾸준히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고 그 성과가 ‘위안부’ 박물관으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세계 11곳의 ‘위안부’ 박물관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은 바른 역사 찾기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전시관 입구에는 ‘나눔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는 분의 청에 못 이겨 그 무렵 내가 써드린 머리말이 여전히 찾아오는 이를 맞아주고 있었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며 가슴이 먹먹해 왔다.

나눔의 집 역사관 고액기부자들의 명단을 배경으로 한지등(韓紙燈)으로 만든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나눔의 집 역사관 고액기부자들의 명단을 배경으로 한지등(韓紙燈)으로 만든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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