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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의 문화현장

❿ 디지털 디바이드, 선택과 필수

by 뽀키2 2023. 6. 20.
글쓴이
2016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항의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뜬 서류 내용을 채워 넣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는 세상. 다니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서류 접수를 직접 도와주던 일자리플러스센터 직원은 ‘잘못된 선례를 만들지 말라’며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정보의 격차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배우려 들지 않는 노인 문제’로 볼 수는 더더욱 없다. 디지털 시대에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의 간극을 통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통틀어 사회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난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사회적 가난과 생물학적 가난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사회적 가난인 셈이다.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라는 말은 1995년 미국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 개리 앤드루 풀(Gary Andrew Poole)이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의미하는 용어’로 처음 사용했고, 미국 상무부가 정책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논의가 확산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따르지 못해 소외되는 ‘디지털 래그(Digital Lag)현상’과 맥을 같이 할수록 더욱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된다. 이제 ‘불편함’의 문제가 아닌 ‘불이익’의 문제로 다가와 ‘불평등’의 문제로 까지 깊어지는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인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배울 수 없고, 배우지 않고, 다시 배울 수 없는 사람이다’는 말로 광범위한 디지털 시스템을 겪는 고충을 말한 바 있다. 그 결과가 어쩔 수 없이 디지털 디바이드에 의한 사회적 약자를 만들었다. 우리 문화예술계에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은 없는 걸까?


그럴 리는 결코 없다. 문화예술계에도 디지털 디바이드가 심화될 가능성이 보이는 이른바 ‘디지털 사각지대’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위기다?, 아니면 사치다? 그걸 따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원치 않거나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정보격차’의 문제는 ‘사회적 격차(Social Divide)’로 변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로 맞닥뜨려진다. 이 무거운 무게를 어찌 견디나. 지고 가려니 무겁고, 두고 가려니 밤길이다. 막막하다. 예술혼, 인문학, 철학은 늘 무거운 느낌이 난다. 예술은 늘 날아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디지털 아트’로 전환하는 것만이 지름길은 결코 아니다.

미래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과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 개념을 처음 사용한 지 20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여정에 참여했지만 모두가 할 수 있거나 하려는 의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감이 자꾸 사라지고, 남이 달아준 이름표를 달고 많은 사람들이 떠밀리듯 어디론가 가고 있다. 발도 땅에 붙어있지 않고, 스스로의 무게감도 잊어버렸다. 지금 당장일 필요도 없는 일들을 하며 떠다니는 것 같다. 장르는 무너졌고, 레토릭도 사라지고, 은유는 불투명해진 것 같다. 나는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신가.

 

영화 [나&#44;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44; 켄 로치 감독&#44; 미래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44; 다큐멘터리 [위드아웃 어 넷:미국의 정보격차] 포스터&#44; 로리 케네디 감독 사진
왼편에서부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켄 로치 감독, 미래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 다큐멘터리 [위드아웃 어 넷:미국의 정보격차] 포스터, 로리 케네디 감독

 

 

디지털 디바이드를 이야기할 때, <위드아웃 어 넷: 더 디지털 디바이드 인 아메리카(Without a Net: The Digital Divide in America)>(2017)이라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더 기억해야한다. 로리 케네디가 연출하고 제이미 폭스가 내레이션을 맡은 이 다큐멘터리의 메시지는 ‘학교에서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는 수백만 명의 학생들을 디지털 어둠에 가둬두고 있는 미국 교육 시스템의 깊은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공립학교마다 디지털 기술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 드러내는 디테일이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디바이드가 사회·경제·문화적 맥락과 연계되어 불평등 구조의 속내를 결국 오프라인 세상으로 그대로 옮겨 갈 것이라는 뻔한 가정을 확인하는 다큐멘터리이다. PC중심의 격차가 스마트 격차로 반영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정보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자와 원하지 않는 자의 문제로 바뀌게 될 거라는 경고에 나만 섬뜩한 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다니엘 블레이크영감이 남기는 마지막 편지의 문구를 생각해본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 노인의 수난은 지금부터 시작일 것이다.

나는 ‘디지털 시대 문화예술의 열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이제 새로운 변화는 오랜 문화와 예술의 관습과 헤어지게 할 것이다’라고 지난 칼럼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누구는 ‘당연지사’라 했고, 누구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리 문화예술계의 진심은 무엇인가. 수고로움조차 문화요, 번거로움조차 예술이라 생각한다면 도도한 물살에 결코 오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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