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개와 고양이도 구분하지 못하던 AI가 드디어 인간을 속일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 곁에 불쑥 다가왔다. ‘AI가 변하느냐, 인간이 변하느냐, 그것이 문제’이기도 하고, 인간과 비인간(레플리컨트)으로 구분되는 ‘공감 능력’ 확장에 누군가는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우리가 그냥 초록별에 살고는 있지만 그냥 ‘신인류’라고 구분 짓는 시대가 왔다. 우리는 상큼한 노랫말과 실험적인 사운드로 1990년대를 주도하던 그룹 015B의 노래를 통해 꽤 낭만적으로 ‘신인류’를 만났지만, 오늘날의 ‘신인류’는 단순한 생활양식뿐 아니라 여러 가지 등장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다양한 미래사회를 떠올려준다.
먼저, 1999년 존 D. 나일스가 만들어 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이야기하는 인간)’이다. 디지털 수다쟁이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이야기 본능’을 가상공간에서 마음껏 풀어낸다. 유튜브, SNS 등이 놀이터가 되었고, 그들은 경제와 정치 쪽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의 행성'이라는 커버스토리를 실으며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인류의 등장을 알린다.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가 탄생하는 과정에 포노 사피엔스가 있으며, 그들의 80%는 아침에 일어나 15분 이내에 문자와 뉴스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고, 자기 건강도 체크한다고 했다. 또한 권력자 감시, 부조리 고발 등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도 하며, 스마트폰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노모포비아(Nomophobia)’라는 병도 생겼다고 보도했다. 쉽게 지어낸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생활화하는 인간’이 되었고, 증강현실(AR) 등으로 차원을 넘나들며, 삶과 일을 융합시키는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최근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라는 꽤나 희망적이고 점잖은 신인류도 등장했다. ‘미래에는 협력하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탄생한 ‘공생 인간’을 말한다. MIT 디지털비즈니스센터장인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제2의 기계시대>에서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고 한술 더 뜬 부제를 달기도 했다. 제2의 기계시대 인간은 창의성과 감수성이 더 요구되는 일에 집중할 것이고, 그럼 우리는 또 어떤 인간으로 이름 붙여질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각 세대도 베이비 부머-X세대-밀레니얼(M)세대-Z세대로 부르게 되면서, 디지털 시대의 다양한 인간형들로 나눠지기에 이른다. 진정한 ‘낀 세대’로, 풍요와 빈곤의 극단을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 문화의 시대를 열고,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사는 1970년대 생인 X세대, 재미를 추구하고,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며, ‘가치를 위해 소비한다’는 M세대, 부모 세대인 X세대 영향으로 M세대보다 더 실용적이고 자유로운 Z세대로 이어져, 이미 우리는 ‘네티즌’에서 앱(Apps)을 통해 역동적인 사회의 중심이 되는 ‘앱티즌’으로 변하고 있으며, 오늘날 일상의 모든 행위는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디어로 연결되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사람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연결된 혼자’가 된 것이다.
사실, 각 세대를 디지털 능력으로 분류하는 것은 M세대 때부터 시작됐다. 여기서 캐나다 기업컨설턴트 돈 탭스콧은 디지털 한복판에서 자란 학생들을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으로 표현한다. ‘넷(net)세대’라고도 했다.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로 불린 그들은 ‘연결된 시대’의 생존에 필요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가 10년쯤 전에 주장했으니, 지금은 29세~40세 사이의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여러 가지 종족의 이름도 가진다. 분별없이 줄인 말로 표현하는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먼저, 2006년의 신조어로 사물 ․ 사람 ․ 상황 ․ 감정 등을 두 글자로 표현한다는 ‘투글(two글)족’,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는 신조어로 삶의 질을 고려하여 참여하게 된다는 ‘BMW족’,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휴식과 검색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업글병(upgrade病)도 앓는다는 ‘찰나족’, 디지털 경제가 만들어낸 20~30대 신세대를 일컫는 ‘예티(YETI)족’, 일상의 에피소드를 동영상으로 올리는 ‘REC족’, 그리고 트렌드 이상의 변화와 흐름을 중시하면서, 더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슬로비(Slobbie)족’ 등이 그 이름들이다. 그리고 디지털시대의 그늘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누에고치 같은 생활을 고수한다고 이름 붙여진 ‘코쿤(cocoon)족’과 사회성이 떨어져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너드(nerd)족’도 더 이상 냉소적인 사람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이제, ‘디제라티’의 시대가 진행 중이다. ‘지식의 지휘자’라고 불리는 과학 베스트셀러 작가 존 브록만을 통해 1999년 구체화된 ‘디제라티(digerati:디지털과 리터라티(literati:지식인)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는 사이버 정보화시대의 신흥 엘리트를 말한다. ‘제3의 문화’를 펼쳐나갈 그들은 남의 권위에 빌붙지 않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벌써 무수한 ‘신인류’ 속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디지털 시대의 ‘나’는 존재감이 자꾸 사라지고, 어디론가 떠밀리듯 가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태어나서 애매하게 불리다가, 멋모르는 현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수사는 사라지고, 은유도 엷어진 세상,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갈러 나서자. 늘 동창(東窓)은 밝아올 것이므로. 신인류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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