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털시대의 문화현장

⓭ ‘디지로그’로 안심하는 AI시대

by 뽀키2 2023. 7. 22.

글쓴이

우리는 ‘예술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조를 듣곤 했지만, 누가 뭐래도 예술은 시대에 대한 저항이며, 묘약이며, 해독제 아닌가. 그 이유는 우리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들며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받는 영국의 비평가 올리비아 랭의 이런 말에 우리는 작은 위로를 받는다. ‘통제력 없는 우리는 접촉을 원하면서도 접촉을 두려워하지만, 표현하는 능력이 있는 한 아직 기회가 있다’. 나는 그 기회의 끈을 ‘디지로그’에서 찾게 된다.

절망적이라고 봐야 하나. AI(인공지능)은 어느새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그로 인한 변화에 늘 주목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창의성은 정보와 학습만으로는 얻기 힘든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만은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인간 고유의 창작 영역에도 AI가 모방의 단계를 넘어 근접할 수 있는지 맹렬한 실험을 거쳐, 어느새 AI는 예술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지 않는가. 흉내를 낼지언정, AI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구글의 CEO인 순다르 피차이는 ‘사람들은 인류 최대 발전을 가져올 잠재력을 갖고 있는 AI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보다 똑똑한 기계는 인류를 멸망시키는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더해져 ‘AI 안티’를 외칠수록 세상과의 격차는 벌어질 뿐이다. 또 ‘AI에게 지배되고 있다는 건 AI와의 협업이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미 ‘AI 소사이어티’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미래라면 하루 빨리 편입되어 앞서가는 편이 낫다는 말에도 많은 이들이 지금 시달리고 있다.

구글의 AI화가 ‘딥 드림’(Deep Dream)의 작품이 미국 경매시장에서 10만불 상당의 판매가를 기록했으며, 단순한 스케치만 제시해도 그럴듯한 작품으로 완성해주는 AI ‘빈센트’도 공개되어 AI가 예술가의 영역에까지 진입했음을 알렸다. 모두 모방작들이라 생각했던 ‘로봇아트대회’의 수상작 중에는 그 누구의 화풍도 떠오르지 않는 새 작품도 등장했다. MS가 중국에서 선보인 AI 로봇 '샤오빙'(小氷)은 세계 최초로 시집을 발간했다. 자가 학습으로 시를 익힌 뒤 중국어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뚫고'를 출간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AI소설가만 출품할 수 있는 공모전도 열렸는데, 그 소식에 ‘인간보다 낫다’는 댓글이 달렸다.

▲(왼편에서부터)이어령교수,《디지로그》표지,구글CEO 순다르 피차이,비평가 올리비아 랭, AI로봇‘샤오빙’의 시집표지 (사진=김정학 관장 제공)

10년 전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는 스페인의 한 대학이 개발한 AI작곡가 ‘이야무스’의 곡을 연주했고, 미국 예일대에서 개발한 ‘쿨리타’는 바흐풍(風)의 음악을 작곡했다. 소니컴퓨터연구소의 AI ‘플로 머신즈’는 15,000여 곡을 익히고는 첫 앨범 <헬로 월드>를 발표했다. 게다가 야마하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감지한 피아노 연주 AI를 선보였고, 사람의 연주를 듣고서는 실시간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인텔의 AI 밴드 공연에는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구글은 ‘마젠타 프로젝트’를 착수하면서 AI가 작곡한 80초 가량의 피아노곡을 공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AI가 생성한 창작물이 늘어나면서 저작권도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는데, EU는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으로 인정했고, 일본은 AI가 만들어낸 것 외에 AI 학습용 데이터, AI 프로그램 등에 관한 저작권도 검토했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뜨고 있다. 사실 AI의 창작물은 아직 뭔가 어색해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부족한 완성도는 사람의 손을 거쳐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AI로 인해 우리의 상상력은 확장되고 창작의 범위는 무한대로 넓어지지 않을까. 자, 엄밀한 의미에서 AI로의 전환을 이끌었던 실험적 전령사는 예술계가 담당했지만, 지금 이 변화의 물결 위에서는 어찌할 것인가. 많은 예술가들이 짊어진 숙명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크리에이터로 살았던 이어령 교수가 암 투병 끝에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광화문의 전자벽화에는 그가 남긴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어요.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마세요…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그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화두로 '디지로그(Digilog)'를 제시한 사람이다. 디지털 기술이 주는 풍요로움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지난 세월에서 축적한 아날로그 정서를 더해야 한다는 개념을 제시해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끈 석학이다.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이다. 디지로그를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어령 교수가 처음이다. 디지로그는 애매한 절충주의가 아니라, 퓨전과 하이브리드의 세상, 우리가 가야 할 세상이라고 말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행복한 결혼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디지로그 시대는 영영 안 올지도 모르고, 온다해도 미미할지도 모른다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갈등을 겪고 있는 문명의 한계를 가르쳐주는 솔루션이 바로 ‘디지로그’라는 말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모기가 들어오니 문을 닫으라고 하고 아빠는 더우니 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러나 디지로그의 세상에서는 ‘방충망을 단다’라는 답이 도출됩니다. 제3의 솔루션, 창조가 이루어지는 거죠”. 이것이 디지로그 아니겠는가. 나는 이 시대 예술가의 존재증명을 바라는 이어령의 사라지지 않을 목소리에, 오늘 자못 안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