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

공명(共鳴)의 시대이므로
대구의 문화예술계가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거대한 구조적 변화와 진통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이제는 양적 팽창이나 행정적 재편을 넘어 ‘질적 도약’과 ‘자생력 확보’라는 본연의 과제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 전환의 시점에서, 대구라는 유서 깊은 문화 도시가 더욱 풍성하고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엘리자베스 노엘-노이만의 ‘침묵의 나선(螺線) 이론(Spiral of Silence...

‘오래된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바꾼 절박함
- 美, 클리블랜드 미술관 ‘아트렌즈 갤러리’ 제조업의 심장이었던 미국 오하이오주(州) 클리블랜드는 이제 ‘러스트 벨트’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쇠락한 도시풍경 속에 감춰진 클리블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은 어떤 도시의 미술관보다 뜨거운 심장을 품고 있다. 미술관 내에서 2013년 ‘갤러리 원(Gallery One)’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은 ‘아트렌즈 갤러리(ArtLens Gallery)’로 불리는 이 공간은 전 세계...

흐린 거울 닦기
역사는 흐르는 강물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의 강물은 언제나 맑고 곧은 건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 던진 오물에 오염되고, 때로는 인위적인 둑에 막혀 물줄기가 비틀거린다. 바른 역사가 온전하게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왜 진실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토록 쉽게 휘어지는 것일까.바른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진실과 위안
대구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6·25 당시 대구는 점령당하지 않아서 참화에서 비켜나 있었고, 피난 온 예술가들이 바흐의 선율을 들으며 ‘문화적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낭만적인 도시였다고. 하지만 이런 인식은 전후 세대가 만들어낸 지독한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전선문화’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을 추억할 때, 정작 공포에 질려 떨었던 시민들의 진실은 외면당하고 있다.역사학자 존 토랜드의...

파기장(破器匠)을 기다리며
조선 시대 도자기를 굽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소인 분원(分院) 가마터,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은 가마 안에서 갓 꺼내진 도자기들은 저마다 눈부신 자태를 뽐냈을 것이다. 도공의 땀과 흙의 기운, 그리고 불의 우연이 만들어낸 이 결과물들 앞에서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릇의 결을 훑는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이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그 ‘지적 애매함’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우리의 일상을 덮치고 있다고 난리들이다. 3차 산업혁명의 절정일 뿐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람들도 시끌벅적, 그 수가 적지 않다. 현란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유독 우리의 귓전을 맴도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통합, 융합, 복합, 통섭, 하이브리드 같은 말들이다. 정치인의 연설문부터 기업 CEO의 신년사, 대학의 통폐합...

음악창의도시 ‘대구’의 역발상
대구에는 한때, 도시의 공기를 바꾸어 놓은 음악FM이 있었다. 무림제지가 운영하던 자체편성100% 음악전문방송 ‘한국FM’. 1980년 언론통폐합이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서, 주파수 89.7MHz는 KBS 대구국으로 넘어갔고, ‘BBC 한국FM’이라는 이름도, 스튜디오도, 거기서 태어난 수많은 청취자의 기억도, 제도권 기록에서는 이제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언론통폐합은 단지 몇 개 언론사의 간판을 바꾸는 행정개편이 아니었다. 동양방송,...

우리가 제대로 울어본 적이 있었나
인구 240만의 대도시 대구는 유난히 2·3·4월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2003년 2월, 중앙로 지하철 방화 참사. 1991년 3월,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1995년 4월,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각각의 사건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사고”라기보다, 국가·지자체·어른들의 책임이 한데 얽힌 인재에 가깝다. 지하철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에는 이제야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때는...

‘누구 편이냐’고만 묻는 시대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거리는 다시금 원색의 물결로 뒤덮이고, 지지를 호소하는 확성기 소리만 광장을 메우고 있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정작 우리가 확인해야 할 본질은 흐릿하기만 하다. 세상은 유권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누구의 편인가?". 편을 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강박은 진영 논리를 강화하고, 합리적인 이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다가오는...

역사의 ‘민낯’ 마주하기
몇해전, 어느 세미나장에서 ‘지방 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자 하는 지자체의 절박함을 이성의 잣대로만 난도질할 일은 아니’라고 ‘동정론’을 펴던 한 분의 모습을 기억한다. 지역을 사랑하는 그 열정이 때로는 과속을 부르고, 그 과속이 본의 아니게 ‘역사 왜곡’이라는 안타까운 생채기를 남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