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흐르는 강물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의 강물은 언제나 맑고 곧은 건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 던진 오물에 오염되고, 때로는 인위적인 둑에 막혀 물줄기가 비틀거린다. 바른 역사가 온전하게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왜 진실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토록 쉽게 휘어지는 것일까.
바른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갖은 장애물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오류, 왜곡, 재해석, 선입견, 편견, 무관심, 그리고 정치적 이유다. 이것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참된 역사를 가리는 두꺼운 가면이 된다. 단순한 사실관계의 실수인 오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설처럼 굳어지고, 의도를 가진 왜곡은 진실의 목소리를 지워버린다. 대중의 선입견과 개인의 편견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고 역사를 반쪽짜리로 전락시킨다.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며, 정치적 이유도 그 폐해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이 장애물 뒤에 숨어 바른 역사 찾기를 집요하게 훼방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그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적 이기주의와, 진실을 마주했을 때 만날 불편함을 피하려는, 우리 자신의 비겁함이 아닐까. 결국 바른 역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정직함을 포기하고 안락함을 택하려는 우리 내면의 나태함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제자리 찾기는 결코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지역 우월주의가 아니다. 근거 없는 비대한 자부심은 오히려 역사의 당당함을 해치고 외부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정직한 역사이며 당당한 역사다. 잘못은 잘못대로 기록하고, 그 안에서 뼈아픈 교훈을 찾아내는 과정이 수반될 때 비로소 역사는 생명력을 얻는다. 논쟁이 있는 지점은 회피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태도로 다시 기록해야 하며, 궁금한 역사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 매듭을 지어주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분투한 세상의 감동적인 사례 중에서, 알래스카에 있는 북미최고봉 ‘데날리(Denali)’의 이름을 되찾은 주민들의 사연을 떠올려본다. 100년 넘게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이름을 딴 ‘매킨리 산’으로 불렸지만, 그 이름은 지역의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치적 산물이었다. 원주민들에게 그 산은 애초 ‘위대한 것, 가장 높은 존재’라는 뜻의 ‘데날리’였다.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했고, 논리적인 근거를 마련해 세상을 설득했다. 결국 2015년, 이 산은 공식적으로 이름을 되찾았다. 이는 단순히 지명을 바꾼 사건이 아니라, 비뚤어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정직하게 되돌려 놓은 당당한 승리이자, 문화적 회복이었다.
우리 지역에도 외부의 시선에 의해 왜곡되거나 세월의 먼지에 묻혀 잊힌 ‘장한 역사’가 분명 존재한다. 어떤 사건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과소평가되었고, 어떤 인물은 시대의 편견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비뚤어진 모습으로 전해지는 지역의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프지만 이제 이들을 하나하나 드러내 보여주어야 한다. 바른 역사의 모습을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데날리의 이름을 되찾은 그들처럼, 우리 역시 논리적인 매듭을 짓는 수고로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직한 역사는 힘이 세다. 과장하지 않아도 빛이 나고, 숨기지 않아도 당당하다. 그 민낯이 비록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디서든 당당히 설 수 있다.
역사의 흐린 거울을 닦는 손길이 많아질수록 진실의 얼굴은 더욱 선명해질 게 분명하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정직한 수고로움이 모여, 마침내 굽어버린 우리 지역의 역사를 곧게 펴고 당당한 물줄기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굽은 강물을 펴는 정직한 매듭, 그 수고로운 길을 오늘부터 묵묵히 가보자. 역사를 바르게 다시 맛보는 기분, 꽤나 쏠쏠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