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6·25 당시 대구는 점령당하지 않아서 참화에서 비켜나 있었고, 피난 온 예술가들이 바흐의 선율을 들으며 ‘문화적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낭만적인 도시였다고. 하지만 이런 인식은 전후 세대가 만들어낸 지독한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전선문화’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을 추억할 때, 정작 공포에 질려 떨었던 시민들의 진실은 외면당하고 있다.
역사학자 존 토랜드의 저서 『죽음의 전투(In Mortal Combat)』를 보면, 그가 묘사한 1950년 8월의 대구는 결코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그는 대구를 ‘공포의 도시(City of Terror)’라고 명명했다. 1950년 8월 14일, 북한군 5개 사단이 낙동강을 건너 서쪽과 북쪽에서 대구를 포위해 들어왔을 때, 그야말로 대구는 위험했다. 적의 포성은 도심까지 울려 퍼졌고, 시민들은 인민군이 곧 강을 건너 도시를 점령할 것이라는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인구 30만의 도시에 성난 파도처럼 40만 명의 피난민이 밀려들어 아비규환을 이뤘다. 거리는 집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기차역으로 몰려들었다. 실제로 대구역 근처에 포탄이 떨어졌을 때, 그 혼란과 절망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았는지. 당시 대통령조차 부산으로의 피난을 고민했고, 미국대사를 위협하면서까지 버티던 긴박한 순간들이 대구의 구석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대구전투의 실상은 더욱 참혹하다. 303고지에서 미군 포로들이 학살당하고, 다부동의 좁은 계곡에서 치열한 전차전이 벌어지는 동안, 대구는 그저 구경꾼이 아니었다. 학교는 학생들 대신 군대와 부상병들로 채워졌고, 학생들은 학도의용군이 되어 낙동강 전선으로 달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교육의 기회는 박탈당했고, 도시는 슬픔과 굶주림에 젖어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찬양해 마지않는 ‘전선문화’의 본질이다.

출처 불분명한 외신기사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선율이 흐르는 도시’라는 표현을 두고 대구의 문화적 품격을 숭배하듯 떠드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 선율이 진정 평화의 노래였겠는가? 그것은 극한의 불안 속에서, 내일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들이 붙잡고 있던 마지막 비명과 다르지 않았다. 폐허에서 들었던 클래식은 외신기자들에게는 초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인본주의적 감동’과 ‘문화적 충격’을 동시에 받았을 것이다. 그 후에 책임있는 누군가는 이 말을 제3자의 관전평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학교를 뺏긴 아이들, 학도병으로 끌려간 학생들, 70만 명이 겪은 굶주림과 전염병의 공포를 생각하고 퍼트렸어야 했다. “바흐의 선율이 흐르던 도시”라는 표현은 전쟁미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투로 해석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외신은 이면에 깔린 대구시민들의 처절함까지는 담지 못했고, 이후 대구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는 그의 책 『전쟁과 가족』에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경험자들이 가실 때 기억을 갖고 떠나시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두고 가시는가? 만약 두고 간다면 남은 자들은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구의 전후 세대들은 전쟁의 경험자들이 남기고 간 그 처절한 기억의 ‘짐’을 ‘선물’로 착각하고 있다. 시대의 진실을 대면하기보다는, 덧칠해진 수식어들에 취해 있는 것이다. ‘한국전선문화관’이 들어서고도 사람들의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점령당하지 않았기에 안전했던 곳이 아니라,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젊음이 산화한 최전선이었던 대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음악소리가 아니라, 낙동강 전선의 포성과 학도병들의 거친 숨소리다.
이제,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어 제대로 고쳐 기록해야 한다. 대구가 겪은 시련을 ‘점령당하지 않았다’는 오만한 안도감으로 덮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는 죽은 자들의 고통을 정직하게 기억하는 데 있다. 그 시절 대구가 감내해야 했던 공포와 눈물을 똑바로 바라보라. 그것이 떠나는 세대가 남긴 ‘짐’을 비로소 ‘선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대구의 전쟁사는 ‘문화’라는 화장품으로 가려질 수 없는,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생존의 기록이어야만 하는데, 올해도 6.25는 무심히 지나갔고, 뻔한 ‘주적(主敵)문답놀이’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