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240만의 대도시 대구는 유난히 2·3·4월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2003년 2월, 중앙로 지하철 방화 참사. 1991년 3월,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1995년 4월,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각각의 사건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사고”라기보다, 국가·지자체·어른들의 책임이 한데 얽힌 인재에 가깝다. 지하철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에는 이제야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때는 흉물처럼 남아 있던 그을린 벽을 살려, 기억공간(추모벽)이 조성되었고,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탑과 함께 공식 추모식도 이어지고 있다. 개구리소년 사건 역시 30주년에 맞춰 사건 현장 인근에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가 세워졌고, 여전히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겉으로 보기엔 “기억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있는데도 많은 대구 시민은 이 비극들은 도시 곳곳에 앙금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제대로 울어본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인 것이다.
대구시는 2월 21일 국채보상운동기념일과 2월 28일 민주학생운동기념일을 묶어, 2월 21~28일을 ‘대구시민주간’으로 지정해 여러 행사를 연다. 국채보상운동은 나라 빚을 시민의 힘으로 갚아보자며 나섰던 기념비적인 운동이고, 2.28은 대구 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일어선 민주화의 불씨였다. 둘 다 자랑스러운 역사다. 문제는 타이밍과 방식이다. 불과 사흘 전인 2월 18일은 중앙로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192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친, 도시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날이다. 이 날엔 시민안전테마파크와 추모공간에서 엄숙한 추모식이 열린다. 그런데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같은 도시에 “대구시민주간”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문화행사와 이벤트가 펼쳐진다. 기념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의 방식은 “슬픔과 책임의 역사를 차분히 성찰하는 시간”이 아니라 “좋은 이유를 들이대고 소비와 축제를 밀어붙이는 구실”처럼 보이기 쉽다. 그 사이에서 비극의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또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는 시민들은 묻는다. “이 도시는 도대체 무엇을, 어떤 순서로 더 소중히 여기는가?”
세계의 도시들을 보자. 그들은 비극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상식’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억하고 격하게 공감했던 비극이다. “추모를 우선하는 사회”는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말하는 것 같았다. 미국 뉴욕은 9월 11일이 되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정적에 휩싸이며, 타임스퀘어의 화려함도 멈춘다.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두 줄기 빛(Tribute in Light)만이 희생자들을 기억할 뿐, 그 어떤 축제도 이날을 침범하지 못한다. 일본 히로시마는 매년 8월 6일, 사이렌과 함께 1분 묵념을 하고, 시장의 평화선언을 들으며, 전쟁과 핵무기의 참상을 기억하자고 다짐한다. 가장 비싼 땅을 ‘평화공원’으로 영구 보존한 선택 자체가 이 도시의 태도를 보여준다.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는 매년 8월 1일 오후 5시, ‘W-hour’가 되면 바쁘게 걷던 행인도, 질주하던 자동차도 거짓말처럼 멈춰 선다. 1944년 나치에 맞선 봉기를 기리는 이 1분간의 정적은 바르샤바 시민들을 역사를 응시하는 거대한 침묵의 비석으로 만든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일 ‘욤 하쇼아(Yom Hashoah)’는 오전 사이렌이 울리면 고속도로의 차량까지 멈춰 서서 2분간 묵념한다. 그 시간만큼은 방송사도 오락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규범이 굳게 자리 잡았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1994년 100일 동안 벌어진 제노사이드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4월 7일부터 추모 기간 ‘크위부카(Kwibuka)’가 시작된다. 이 기간에는 소위 “즐기는 행사”는 법과 규범으로 강하게 제한된다. “너무 길고, 너무 무겁다”고 할지 몰라도,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이다.
이 도시들은 비극을 떠올려야 하는 날에는, 추모가 우선되는 질서를 반듯이 세웠다. 경제 논리와 이미지 걱정을 넘어서서, “우리는 어떤 도시가 되고 싶은가”라는 정체성 문제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대구의 2·3·4월도 추모와 애도, 성찰의 시간으로 보내고, 5월부터 에너지 넘치는 축제로 도시의 본모습을 보여주자. 현실적으로 몇 가지 벽이 있을 것이다. 먼저, 행정의 관성. 해마다 예산과 일정이 굳어 있고, 집행조직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자리 잡은 틀 안에 “어둡고 불편한 기억”을 끌어들이는 건 부담스럽다. 둘째, 경제 논리. 3~4월은 날씨가 풀리며 상권이 살아나는 계절. 상인과 자영업자들은 “언제까지 우울하게만 있을 거냐, 이제는 좀 웃고 살자”는 식의 논리를 펼치기 쉽다. 세번째는 이미지 피로와 망각 욕구. 일부 시민들 사이엔 “대구, 참사 얘기 이제 좀 그만하자. 어둡다”는 정서도 있다. 이런 피로감이 “기억의 정치”를 가볍게 다루는 좋은 핑계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 2월: 18일 지하철 참사 추모식과 21·28일을 묶어, “대구 생명·정신 주간” 같은 이름으로 재정의하여, 국채보상(책임), 2.28(정의), 지하철참사(생명·안전)를 하나의 서사로 엮는 것이다. ∙ 3월·4월: 개구리소년 사건과 상인동 가스폭발을 연결해 “어린이 안전·도시 인프라 안전”을 주제로 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집중 배치하여, 대구를 전국 단위 안전교육의 허브로 키우는 상상도 가능하다. ∙ 5월 이후: “우리는 충분히 기억했고, 약속했고, 준비했다. 이제 안전 위에 세워진 축제를 시작하자”는 메시지는 도시 브랜드를 더 선명하게 할 것이다.
대구의 2·3·4월은 ‘우리가 어떤 실패를 겪었고, 그 실패를 발판 삼아 어떤 도시가 되려 하는지’를 확인하는 정신무장의 계절이다. 이제 이 얘기는 정치의 언어로 번역될 필요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오는 후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에게 2·3·4월은 어떤 의미인가?” “대구의 2·3·4월을 ‘생명과 안전의 계절’로 선포할 의지가 있는가?” “자랑스러운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를 함께 품는 시간으로 재구성할 생각은 있는가?” 모든 권한은 그들에게 있다. 지금까지 대구는 국채보상과 2.28만 전면에 내세우며 “우리는 정의롭고 애국적인 도시”라는 절반 짜리 이야기만 반복해왔다. 나머지 절반, “우리는 인재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지만, 그 아픔을 발판 삼아 한국에서 가장 안전을 중시하는 도시가 되었다”는 서사는 여전히 비어 있다. 대구 시민이, 특히 유권자가 이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지 않으면, 행정은 계속 편한 기억만 골라서 기념할 것이다. 피해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 도시에서, 그건 너무 싸구려 선택이다.
가능할까? 정치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행정적으로는 조금 귀찮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대구 시민이 이렇게 자문(自問)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울어본 적이 있었나”, “우리는 어떤 도시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금 이 질문을 던지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대구의 2·3·4월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해외 도시를 보며 부러워하던 그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대구를 부러워하는 눈길”로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