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거리는 다시금 원색의 물결로 뒤덮이고, 지지를 호소하는 확성기 소리만 광장을 메우고 있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정작 우리가 확인해야 할 본질은 흐릿하기만 하다. 세상은 유권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누구의 편인가?”. 편을 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강박은 진영 논리를 강화하고, 합리적인 이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는 우리에게 단순한 투표 이상의 소중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나는 이 혼란의 시기에, 차라리 눈을 돌려 역사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속에 묻혀 있던 오래된 목민관(牧民官)들의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대구의 역사 속에 실존했던 두 인물, 권문해와 민응수의 행적은 오늘날 우리가 선출해야 할 리더의 자격이 무엇인지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디나 링컨 같은 먼 나라 위인전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치열하게 백성을 사랑하고 시스템을 개혁했던 두 선배의 삶이, 오늘의 우리의 어깨에 준엄한 죽비(竹篦)를 내리치고 있다.
먼저, 430년 전 ‘조선의 산타클로스’라 불릴만한 인물, 대구부사 권문해(權文海, 1534~1591)를 소환한다. 그는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면목은 재난 앞에서 빛을 발했다. 1590년, 조선은 전염병과 흉년, 당파싸움, 그리고 다가올 전쟁의 전조로 신음하고 있었다. 보통의 관리라면 관아의 깊숙한 곳에 앉아 중앙의 눈치를 보거나, 보고서상의 숫자로만 백성을 다스리려 했을 것이다. 이때 권문해는 책상머리에서 보고만 받지 않았다. “직접 재난을 당해보면, 아무리 좋은 구휼이라도 때를 놓치면 한갓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는 음력 정월 6일, 엄동설한의 추위를 뚫고 직접 구휼미를 싣고 길을 나섰다. 달성 하빈, 입안면, 해안현, 동촌, 수성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의 발자국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행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희망의 증거였다. 재난은 가장 낮은 곳부터 할킨다. 아무리 좋은 구휼 정책이라도 시기를 놓치거나 현장에 닿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알았다. 권문해는 오늘날로 치면 ‘긴급재난지원금’을 들고 직접 현장을 누빈 ‘발로 뛰는 시장님’이었다. 그의 『초간일기(草澗日記)』(보물 879호)에 기록된 백성 사랑의 흔적은 단순한 업무 일지가 아니라, 굶주린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던 한 공직자의 절절한 기록이다. 오늘날 선거철에만 시장통을 찾아 어색하게 떡볶이를 집어 먹는 후보들과, 백성의 생존을 위해 얼어붙은 길을 나섰던 권문해의 진정성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가.

또 한 사람, 영조 시대 경상도 관찰사 민응수(閔應洙, 1684~1750)의 리더십은 ‘유능함’과 ‘통합’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1734년 대구읍성을 축조하면서 놀라운 경영 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그는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감영에서 아끼고 저축하여 불린 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요판취리(料瓣取利)’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훗날 정약용이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참고했던 실학정신의 모태가 되었으며, 『목민심서』에도 영향을 준 혁신적인 재정 운용이었다. 민응수의 축성은 단순히 성벽을 쌓는 토목공사가 아니었다. 그는 동차(童車)라는 과학적 장비를 도입해 공사 기간을 5개월로 단축했고, 농한기를 이용함으로써 백성의 생업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머문 감동적인 그의 포용력이다. 당시 천대받던 승려들의 노고를 안타깝게 여겨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었고,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며 그들을 축성의 주체로 참여시켰다. 탕평책을 건의하며 남인과 소론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려 했던 그의 모습에서는, 내 편 네 편을 가르지 않고 오직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통합의 리더십’을 본다. 영조의 노여움으로 유배를 간 김성탁 사건을 두고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영남사람 전부를 그르다고 할 수 없다”며 지역민을 변호했던 그의 기개는, 지역감정을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오늘날의 정치행태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역사는 말한다. 위대한 목민관은 당파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권문해가 ‘가슴’으로 백성의 눈물을 닦았다면, 민응수는 ‘머리’로 백성의 곳간을 채우고 삶의 터전을 닦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그들은 “누구 편에 서야 살아남는가”를 묻지 않았다. 오직 하나, “무엇이 백성을 위하는 길인가”를 물었다. 그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있었기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는 그들을 ‘참된 목민관’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는 지역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기회다. 화려한 현수막과 정당의 간판 뒤에 숨은 후보자들을 향해 우리는 역사라는 거울을 한번 들이대 보아야 한다. 권문해처럼 위기의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갈 뜨거운 심장을 가졌는지, 민응수처럼 반대편의 목소리까지 끌어안으며 실질적인 해법을 만들어낼 차가운 머리를 가졌는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세상의 질문을 들었을 때, 소설가 김훈은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 인간의 시비(是非)는 끝이 없다. 나의 목표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산문집 서문에서 말했다. 이 문장은 한국 사회의 진영 논리와 끝없는 이념 대립에서 한발 물러나, 생명과 고통 그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작가의 생명 존중 사상이 잘 담겨있어 정치의 계절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이제 우리는 후보자들에게 “너는 어느 편이냐”를 묻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춰야 한다. 대신 물어야 한다. “당신은 권문해처럼 위기의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은 민응수처럼 반대파와 소외된 이들까지 끌어안을 실용과 통합의 비전을 갖고 있는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진영의 승리는 잠시일 뿐이지만, 잘못된 리더를 뽑았을 때 겪어야 할 민생의 고통은 길기 때문이다. 주변 분들에게 이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들려 온 가장 명쾌했던 반응을 기억한다. “옛날 사람들이 더 복이 많네. 시장, 도지사가 그 정도는 돼야지!”
권문해의 따뜻한 현장성과 민응수의 차가운 이성이 결합된 리더십.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그런 인물을 찾아내는 혜안의 장이 되기를, 그저 승자독식의 전쟁터가 아니라, 진정으로 지역을 살리는 ‘공복(公僕)’을 찾아내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부디, “누구의 편인가”라는 질문 대신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오래된 미래’의 답이다.
이제 유권자인 우리가 더 영악해져야 할 때다.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길들어져 무비판적으로 투표장에 들어서는 일은 멈춰야 한다.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길들어지는 대신 이젠 우리가 그들을 길들여야 한다. 시민의 삶을 지키는 ‘우리 편’을 만들어야 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